[중앙로365] 의료서비스 공공재 논쟁이 던지는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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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상황 속에서 벌어진 의료진 집단휴진 사태가 끝이 났다. 정부는 의사들이 격렬히 반대한 공공 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지역의사제 등의 입법 추진을 원점 재검토하기로 했다. 언뜻 보기에 의사들의 승리로 상황이 종료된 듯하다. 하지만 승자는 없다. 정부는 일방적이고 성급한 정책 추진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촉발했고, 갈등 조정의 무능함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국민적 공감을 그다지 얻지 못했고, 그간 쌓은 신뢰를 잃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됐다.

전례 없는 감염병 재난 상황에서, 단편적 개선만으로는 역부족인 부실한 공공의료 시스템의 민낯이 드러났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병상 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수익성 등을 이유로 민간병원이 회피하는 감염병 환자를 받을 공공병상 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감염내과 전문의, 공중보건의, 역학조사관, 기초의학자 등 인력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정부의 정책 제안은 이런 상황인식을 반영했을 것이다. 문제는 제안한 대책이 포괄적인 개혁방안 속에서 추진되지 않았고, 의료계를 포함한 시민단체들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의료진 집단휴진 국민만 피해
부실한 공공의료 민낯 노출

공적 지원 수준 낮아 '공공재' 민망
의료시스템 체질 개선 투자할 때

민선 7기 공약 서부산의료원 건립 등
부산 공공의료벨트 구축 이어져야

갈등의 씨앗은 여전히 남아있고, 개선을 위한 논의는 이제 시작이다. 정부-의사 간 갈등을 보며, 의사들이 의료서비스를 바라보는 관점에 주목하게 됐다. 이번 갈등의 기폭제는 ‘의사는 공공재’라고 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의 발언이었다. 의사협회는 공분했고,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라는 발언과 칼럼이 쏟아졌다.

공공재는 국방, 경찰, 소방, 등대 등과 같이 모든 사람이 개별적으로 값을 치르지 않고 공동으로 이용하는 물건을 뜻한다.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누구도 선뜻 나서서 생산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직접 제공한다. 모든 사람의 삶에 꼭 필요하다는 점에서 필수재의 성격도 갖는다. 모두가 최소한 수준 이상의 혜택을 누려야 한다는 점에서 가치재의 성격도 갖는다. 교육·의료·복지서비스는 순수한 의미의 공공재는 아니나, 필수재·가치재의 성격을 갖는다. 학술적 의미는 다르나, 세 용어 모두 정부의 공적 개입과 책임을 강조한다. 만약 공공재가 아니라, 필수재 혹은 가치재라 했다면 공분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의료는 공공재가 아니라는 이들이 든 주요한 논거는 두 가지다. 첫째, 의사가 되기까지 든 교육, 수련비용, 개업과 취업, 의료사고 위험 등에 대한 비용을 개인이 혼자 부담했기 때문이라 한다. 영국 NHS(국민보건시스템) 같이 공적 지위를 보장하지는 않았더라도, 의사가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는 아무런 지원도 하지 않았는가. 아니다. 둘째, 공공재라 칭할 만큼의 정부 투자 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방역, 중증외상, 분만 등에서 공공성을 도입하고자 한다면 공공재라는 정의에 맞는 투자를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공적 지원이 부족해 공공재라 보기 어렵다는 인식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여기서 궁금해진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부가 의료서비스를 공공재로 만들기를 바라는가. 의료인력의 교육·수련 과정을 정부가 책임지고, 공공병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이에 대한 인적·물적 자원을 늘리기를 바라는가. 더 나아가 영국의 NHS 같은 의료시스템의 대(大)개조를 진정 원하는가. 이번 집단행동이 정부 정책의 단편적이고 미약함을 비판하면서, 공적 투자를 더 늘리라는 의미에서 벌인 것이라면 전적으로 지지하는 바다. 그런데 왜 의료서비스가 공공재가 되는 것에 저항하는 것으로 보이는지 모르겠다.

원점에서 논의를 다시 시작할 정부에 바란다. 지금까지 민간병원 과잉, 수익성 위주로 운영되어 온 한국 의료시스템은 공공재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공적 지원 수준이 낮았다. 9월 1일 발표된 내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은 실망스럽다. 공공의료 확충 예산은 전년 대비 73억 원 증액하는 데에 그쳤고, 공공병원 신축 예산은 아예 편성되지 않았다.

의료서비스는 국민의 생명과 삶의 존엄성을 지키는 공공재여야 한다. 이를 위해 전반적인 의료시스템의 체질 개선에 투자해야 한다. 개혁안을 모색하는 과정에, 의사만이 아니라 다양한 의료인력,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공공성은 투명성과 민주성의 기반 위에 확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산으로 눈을 돌려본다. 안타깝게도 부산의 공공의료 수준은 전국 최하위다. 민선 7기 시장 공약으로 제시되었던 서부산의료원 건립, 침례병원 공공병원화, 시민건강재단 설립을 통한 공공 보건의료벨트 구축은 부산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방편이다. 그마저도 추진이 더디기만 하다. 시장은 사퇴했으나, 공약은 시민에 대한 책임감으로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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