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사 파업에 막힌 공공의료 강화, 포기해선 안 된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부와 의료계가 의과대학 정원 확대·공공의대 신설 등 ‘4대 의료 정책’을 중단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는 데 합의하면서 2주를 끌어오던 의사 파업이 결국 일단락됐다. 강경한 입장이었던 전공의들도 집단 휴진을 철회하고 오늘 오전 7시를 기해 업무에 복귀한다는 입장을 최종적으로 밝혔다. 일단 코로나19 사태라는 엄중한 상황에서 의사들이 의료 현장으로 돌아온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볼모로 삼은 의료계의 집단행동과 정부의 미숙한 정책적 대응 능력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의료 공백에 대한 불안감을 넘어 양쪽의 갈등으로 국민들이 받은 정신적 상처가 너무나 깊은 탓이다.

의-정, 의료 정책 원점 재검토 합의
정부, 치밀한 준비로 타협 끌어내야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의료 개혁과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국가적·시대적 과제가 동력을 잃었다는 데 있다. 정부와 의료계의 합의 사항은 두 가지다. ‘의료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되, ‘코로나19 안정화 이후 의·정 협의체를 구성해서 처음부터 논의’하자는 것이다. 공공의료 확충과 관련해 어렵사리 이어온 논의들이 ‘전면 올스톱’에 처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책적 후퇴다. 합의문에 명시된 ‘코로나 안정화’라는 개념 자체부터 모호하다. 애초 2022년부터 추진하기로 했던 의대 정원 확대는 사실상 지연이 불가피해졌다. 정부에 대해 '밀실 합의' ‘백기 투항’ ‘공공의료 포기’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건 그런 이유다.

주지하다시피, 수도권과 지방의 극심한 의료 불평등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내 의사의 절반 이상인 52.1%가 수도권에 분포돼 있다고 한다. 지방은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기 힘든 곳이 허다하고, 지역과 지역 사이에도 의료 격차는 엄존한다. 의료 공백을 메우고 의료 취약 지역을 개선하려면 지역 공공병원과 공공의사 확충, 비대면 진료 도입 등이 꼭 필요하다. 이번 사태로 우리 의료의 부끄러운 민낯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공공의료 체계에 대한 정부 투자가 얼마나 미미했는지, 지역 간 의료 격차는 물론 진료과별로 의료인들의 수급 불균형 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수십 년간 누적돼 온 의료 시스템의 문제점이 다 드러난 것이다. 이번 합의로 갈등은 봉합됐지만 공공의료 확충의 당위성과 의료체계를 혁신하는 작업이 결코 무력화돼선 안 된다.

공공의료는 국민의 생명·건강과 관련된 중대한 국가적 의제다. 그동안 뚜렷한 정책 목표에도 불구하고 의료계 반발에 번번이 발목을 잡혔는데, 이번 정부도 과오를 되풀이하고 말았다. 소통과 설득 없는 일방통행식이나 치밀하지 못한 허술함으로는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현실에서 이뤄낼 수 없다. 그리고 그 모든 피해는 국민들이 입는다. 이 점을 정부가 절실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향후 제대로 된 준비로 타협과 양보를 끌어내 합리적 공공의료 개혁안을 만들기 바란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