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불출마' 김세연이 부산에 진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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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호 서울정치팀 부장

20대 국회 임기를 마치고 자연인으로 돌아간 김세연 전 의원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연락이 닿은 김 전 의원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 지하철 9호선 선유도역 인근에 있는 ‘캠퍼스 D’라는 말에 발걸음을 옮겼다. 도심의 오피스 빌딩 속에 있는 흔한 사무실로 알고 찾은 곳은 과거 물류 창고로 쓰이던 건물이었다.

외관은 창고였지만, 내부는 현대식 인테리어로 고쳐져 있었다. 사무공간, 강연장 2개, 크기와 목적이 다른 회의실 서너개로 나눠져 있다. 김 전 의원의 방에는 책상도 없이 둥근 탁자 하나와 대여섯개의 의자, 의정활동의 기억을 떠올리는 상패·기념품 등을 놓는 책장 겸용 장식장이 전부였다.

인상적인 곳은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일종의 ‘스마트 팩토리’였다. 거기에는 3D프린터, 네트워크 장비, 바이오 헬스 분야 등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입주해있었다. 인간의 감정에 따라 만들어지는 뇌파를 3D프린터로 출력해 전시해 놓은 모형이 눈길을 끌었다.

그날은 마침 ‘청년정치학교’ 강의가 있는 날이었다. 청년정치학교는 청년 때부터 민주적인 시민정치교육이 시작돼야 한다면서 김 전 의원 등이 주도해 만든 비영리단체이다. 과거 새누리당의 대표적 쇄신그룹인 ‘남(남경필)·원(원희룡)·정(정병국)’의 정병국 전 의원(21대 총선 불출마)이 교장이고, 김 전 의원은 교무부장이다.

예비역 육군 중장인 신원식(국민의힘) 의원이 이날 초청강사였는데 주제는 ‘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나’였다. 20대 초·중반의 청년학생들이 보수의 어젠다인 북핵 문제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김 전 의원은 종이컵에 손수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와 기자에게 전하면서 글로벌 기계세(稅), 데이터 재산권, 기본소득 등 10년 후 한국 사회의 어젠다를 논했다.

12년만에 금배지를 내려놓은 김 전 의원의 근황을 소개한 것은 젊은이들의 혁신적인 경제활동을 돕고, 정치에 대한 그들의 관심을 충족시켜주는 이 공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봤기 때문이다. 정당이나 이념을 중심에 두지 않는 새로운 정치를 고민하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아쉬운 것은 부산이 아닌 서울에 있다는 점이다. 이런 활동을 하는게 아직은 서울 말고는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때(6월 중순) 만해도 김 전 의원의 부산시장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이런 구상과 노력이 부산에서도 이뤄진다면 지역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4일 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차지하고도 미련없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렇더라도 김 전 의원은 부산에 대한 마음의 빚을 깊이 간직해야 한다. 자신을 세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것도 그렇지만, 그의 조부와 부친 역시 사업과 정치를 하면서 부산과 부산시민들로부터 많은 은혜를 입었다.

김 전 의원은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불출마의 변을 밝혔다. 그가 어떤 자리에 있건, 최선을 다해 만들 첫 번째 ‘더 나은 공동체’가 부산이길 바란다. psh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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