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조코비치의 '홧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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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홧김에’라는 말을 종종 접한다. 사건 사고 기사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로 허다한 표현이다. 홧김에의 사전적 의미는 ‘화가 나는 기회나 계기’를 뜻한다. ‘홧김에 헤어졌다’, ‘홧김에 집을 나갔다’, ‘홧김에 물건을 부쉈다’ 등 주로 부정적인 의미가 뒤따른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질병을 유발하는 6가지의 외감, 풍(風)·한(寒)·서(暑)·습(濕)·조(燥)·화(火) 중 우리의 감정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화(火)라고 했다. 화는 사람의 움직임을 주관한다. 화가 없으면 사람은 활동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운동선수들은 일반인들보다 화가 많은 사람이란 말일까.

화는 꼭 있어야 하는 것이지만 지나치면 병이 된다. 화가 지나치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쓰는 ‘화가 치솟는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를 전문 용어로 ‘궐양지화(厥陽之火)’라고 한다. <동의보감>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오장육부에는 궐양지화가 있다. 이는 온갖 욕심과 감정이 지나칠 때 발동한다. 몹시 성내면 화 기운이 간(肝)에서 일어나고, 취하거나 지나치게 먹으면 화 기운이 위(胃)에서 일어나며, 성생활을 지나치게 하면 화 기운이 신(腎)에서 일어나며… 몸의 중심이 되는 심장에서 화 기운이 일어나면 죽게 된다.’

남자 프로테니스 세계랭킹 1위인 노바크 조코비치가 경기 도중 화를 억제하지 못해 엄청난 피해를 봤다. 지난 7일 열린 US오픈 테니스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조코비치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화를 참지 못하고 코트 뒤쪽으로 공을 쳤고, 공교롭게도 이 공이 선심의 목에 정통으로 맞은 것이다.

조코비치는 놀라면서 선심에게 다가가 사과했지만, 끝내 실격당했다. 조코비치는 16강에 진출하면서 확보했던 상금 25만 달러(약 3억 원)와 랭킹 포인트가 모두 날아갔고, 벌금도 내야 한다. 메이저 대회 우승은 물론 올 시즌 26연승의 기록도 물거품이 됐다.

당시 상황을 보면 조코비치의 행동이 고의는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화를 억제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명성에 상당한 흠집이 난 건 분명하다.

화를 억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동의보감에서도 약재보다는 수양을 강조했다. ‘마음을 바르게 하라(正心)’, ‘마음을 가다듬어라(收心)’, ‘마음을 기르라(養心)’ 고 했다. 마음의 화가 함부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정신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명상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김진성 스포츠팀장 pape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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