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광명의 정견만리(正見萬理)] 성교육, 어른이 먼저 받아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위원

아이들 이성 교제와 관련해서는 나름 개방적이라 자처하는 A 씨. 청소년 성 문제 상담사를 만났다. 상담사는 그에게 “아이에게 콘돔을 쥐여 주고 사용법을 가르쳐 줘라”고 했다. 성관계 등 아이들의 이성 교제 방식은 이미 어른들의 상상 이상으로 노골적이니 차라리 불의의 피해를 막는 게 최선이라는 뜻이었다. 상담사는 “내 아이만은 다를 것이라는 고루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도 했다.

A 씨도 세상이 바뀌었음은 느낀다. 길에서 서로 뺨을 비벼 대며 걷는 아이들이 마뜩잖아 쳐다보면 오히려 ‘당신이 뭔 상관이냐’는 표정을 짓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가 될 듯하나 여전히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제 겨우 중학생인 딸아이를 앞에 두고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라고? 그게 가능한가!

여가부 성 평등 교재 회수 사태 논란
일부 표현 “조기 성애화 조장” 비판
국가 정책 하루 아침에 바뀌어 씁쓸

아이 아닌 어른 시각에서 갑론을박
초등생도 이미 성 인식 과거와 달라
우리 사회 성교육 현실 되돌아 봐야


최근 아이들 성교육을 위한 그림책 하나가 온 나라를 발칵 뒤집은 일이 있었다.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나다움 어린이 책’ 시리즈의 하나인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그림책이다. 덴마크에서 1971년에 출간돼, 2017년 한국에 소개됐다. 어른들이 성관계를 갖고 아기를 낳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여성가족부는 이 책을 성 평등 교재 차원에서 몇몇 초등학교에 배포했다.

그런데 책 내용 중 일부 표현이 문제가 됐다. ‘아빠랑 엄마는 서로 사랑해. 그래서 뽀뽀도 하지. 아빠 고추가 커지면서 번쩍 솟아올라. 두 사람은 고추를 질에 넣고 싶어져. 재미있거든’이라는 표현이 그중 하나였다. 이에 대해 일부 학부모 단체가 성관계를 지나치게 외설적으로 묘사한다며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리는 등 비판이 삽시간에 퍼졌다. 급기야 불똥은 국회로 번졌다. 지난달 25일 김병욱 미래통합당 의원이 “초등학생에게 조기 성애화 우려까지 있는 노골적 표현이 있다”며 “그림도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다”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여성가족부는 다음 날 해당 교재에 대해 회수 조치에 들어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같은 논란은 순전히 어른들의 시각에서만 일어나고 있다. 아이들은 별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아닌 게 아니라 성 문제에 있어서 요즘 아이들은 이미 웬만한 어른들 뺨칠 정도다. 손만 잡아도 임신이 된다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 아이도 있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요즘 아이들은 성에 대해 그렇게 순진하지 않다. 풋내 나는 어린애로만 볼 일이 아니다.

요즘 아이들은 지금 어른들이 클 때와는 다르다. 남이 어떻게 생각할까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이성과의 교제에도 적극적이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의 경우 적어도 셋 중 한 명 꼴로 이성 친구를 사귄다. 중학생이 되면 그 비율은 절반을 넘어선다. 그 가운데 일부는 실제 성관계 경험까지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엔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한 사진이나 영상은 마음만 먹으면 주변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 인터넷이나 SNS, 게임 등에서 묘사되는 성 표현 수위는 어른들의 예상을 크게 넘어선다. 이를 두고 어른들이 “내가 네 나이 때는…”이라며 야단치면 아이들은 피식 웃는다.

아이의 성은 조숙해 가는데 어른들은 거기에 대응할 준비가 안 돼 있다. ‘성관계는 재미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알면 왜 안 되는가? 아이들이 “재미있는 거 나도 해보겠다”고 나선다면? 거기에 맞는 적절한 대답을 해주면 될 일이다. 아이는 멀뚱하게 묻는데 어른 스스로가 민망하게 여기는 것일 수도 있다. 피임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이 아이들의 성관계를 부추길 수 있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잘못되었다. 성교육이 성행동 시작 시기를 앞당기는 일은 거의 없으며, 오히려 시작 시기를 늦추거나 성적 행동에 더 책임감 있는 태도를 갖게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여성가족부가 스스로 수년간 준비해서 훌륭한 성교육 교재라며 내놓은 그림책을 잠깐 논란이 된다고 허겁지겁 회수에 나서는 실태는 성을 바라보는 어른들의 인식이 얼마나 어설픈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정부의 국가 정책이 하루아침에 바뀌느냐, 정부가 성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느냐는 등의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이번 기회에 우리 성교육 현실을 되돌아봐야 한다. 어른들은 흔히 성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말하지만 실상으로는 그에 대한 솔직한 논의나 대화를 민망하게 여기며 꺼린다.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 어른들 대부분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다. 자신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는데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칠 리 만무하다.

요즘 청소년 성 상담 과정에서는 체위 등 성행위의 구체적인 테크닉까지 거리낌 없이 얘기된다고 한다. 이미 세상은 변했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의 성 인식이 미숙하다. 아이에 앞서 어른을 먼저 교육해야 한다. kmyim@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