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그대 말씀도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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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세종 시대의 명재상으로 유명한 황희 정승의 일화 가운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집안의 여종 둘이서 말다툼을 했던 모양이다. 분을 못 참은 한 여종이 억울함을 호소하자 황희 정승의 말씀인즉 “그래, 네 말이 옳다”고 했단다. 이어 다른 여종이 와 또 억울함을 털어놓자 이번에도 정승의 말씀인즉 “그래, 네 말이 옳다”고 했단다. 옆에서 이런 일을 모두 지켜보던 부인이 핀잔을 주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려 주셔야지 어떻게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고 하시오?” 그랬더니 정승께서 또 말씀하셨단다. “부인 말씀도 옳소.”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3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2차 재난지원금과 관련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 극복 위한 2차재난지원금
보편 지급이냐 선별 지급이냐 놓고
여당 대선 주자 간 신경전으로 비화

두 주장 모두 나름의 타당성 있지만
‘피해업종 긴급지원금’ 용어 썼다면
불필요한 실망감 안기지 않았을 것

“백성들은 가난함보다 고르지 않음을 더 걱정한다.” 중국 송나라 시대의 유학자인 육구연이 <논어>의 <계씨편>에 나오는 “불환과이환불균, 불환빈이환불안(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라는 구절을 요약한 말이다. 난데없이 옛 성현의 말씀이 세간의 화제가 된 이유는 바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원하기로 결정한 데 대해 불편한 소회를 노골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지사의 보편 지급 주장이 대선 경쟁자인 이낙연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의도가 아니냐고 의심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무관하게 이 지시가 이미 오래 전부터 모든 국민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고 주장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편 지급과 선별 지급 가운데 누가 옳은가? 미안하지만 이 말씀도 옳고 저 말씀도 옳다. 이낙연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기재부 등 정부의 주장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특히 심각한 피해를 입은 업종과 특수직 종사자들에게 더 많은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선별 지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피해의 경중과 긴급지원의 시급함을 고려해 보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는 주장이다. 반면에 이재명 지사와 정의당 등 다른 이들은 선별의 어려움과 지원에서 소외된 국민들의 실망감을 고려하면 보편 지급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참 겸연쩍은 일이다만 내가 듣기에는 이 말씀 또한 옳다. 다만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 언어의 세세함에 너무 무심한 듯해서 조금 아쉽다. 선별 지급이냐 보편 지급이냐 하는 논란은 지난번 재난지원금 때도 있었고, 그때 보편 지급으로 결정된 데에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 지원금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을 때 많은 국민들이 또 한 번 더 지원금을 받을까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처음부터 피해업종 긴급지원금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해당 직종 대상자에게는 모두 지급한다는 식으로 표현했더라면 왜 누구는 주고 누구는 안 주느냐는 오해나 논란도 피할 수 있었을 터이다. 국민들에게 괜한 기대를 품게 만드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되레 실망감만 준 셈이다. 그렇다고 이 지사의 표현처럼 국가에 대한 원망과 배신감이 불길처럼 퍼져 나갈 만큼 심각한 일인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보편 지급과 선별 지급 사이에 조금 더 슬기로운 해법은 없을까? 나는 이 지사가 모든 국민에게 10만 원이라도 주자고 한 의견에 공감한다. 임시공휴일 지정을 발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사태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니 더 긴급한 분들에게는 가능한 만큼 더 많은 지원을 드리고, 지친 모든 국민들에게는 조그마한 위로라도 드린다면 참 좋지 않은가 하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당의 최고위원이라는 어느 분이 또 말하기를 게임은 끝났는데 왜 미련을 못 버리느냐며 이 지사에게 지청구를 놓고 나섰다 한다. 나는 가난도 걱정되고 불평등도 걱정되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 토론을 그저 대권 주자들의 힘겨루기 게임으로밖에 보지 못하는 몇몇 정치꾼들의 입이 더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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