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공부란 무엇인가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의사 단체들의 집단 진료 거부 국면에서 새삼 ‘전교 1등’이 시중에 화제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이달 초 SNS 공식 계정에 올렸다 내린 카드 뉴스는 ‘생사를 가를 진단을 받는데 어떤 의사를 선택하겠냐’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이 모자란 공공 의대 의사를 보기로 제시했다. 공공 의대 선발 기준과 절차의 진위를 떠나 시민들의 뇌리에 유독 박힌 단어가 ‘전교 1등’이었다.

고교 이과 상위권 학생들이 들어가는 대학은 ‘SKY’와 카이스트, 포스텍 앞에 ‘의·치·한·수’(의대 치대 한의대 수의대)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 말대로 선두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 학창 시절을 얼마나 노심초사, 분골쇄신, ‘노오력’ 했을지 설명하지 않아도 안다.

하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와중에 벌인 집단 진료 거부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시민들의 시선은 곱지 않은데, 학력과 성적을 의료 행위의 유능함과 동일시하는 모습이 뿌리 깊은 학력 우월주의를 드러낸 것으로 비쳐 의료계 전반에 대한 불신과 조롱 사태로까지 번지고 있다.

학교도 학생도 모두 줄 세워 경쟁시키며 급성장한 우리나라에서 성적과 학벌은 학창 시절을 얼마나 성실하게 보냈는지 증명하는, 평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다. 100세 시대라는 우리 삶에 열아홉까지 학교에서 거둔 성적이 나머지 80년 인생을 좌우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과연 성적·학벌 좋은 사람이 늘 행복한가. 고교까지의 성적이 실제 나머지 삶을 좌우하는가. 학벌이 그 사람의 유능함을 비롯한 다른 많은 면도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정당한가. 공부가 성적이고, 성적이 대학이고, 대학이 직업이고, 대학과 직업이 계급인 한국 사회에서 도대체 공부란 무엇인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하나 확실한 것은 학교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점이다. 배움엔 끝이 없다. 배우고 실천하니 얼마나 기쁘냐는 공자님 말씀도 있다. 독서와 여행 등 직간접 경험을 끊임없이 쌓으며 자신이 얼마나 많이 모르는지를 알아가는 것이 공부 과정 아닐까. 게다가 요즘 신입 사원 면접에서 인성을 가장 중시한다는 기업인들의 공통된 말을 듣고 보면 공부에 대한 관점 변화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는 것 아닐까. 또 하나 확실한 것은 이렇게 뻔한 소리로 지면 낭비하는 기자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호진 해양수산부장 jiny@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