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동백전, 소상공인들을 위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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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 논설위원

시장 입구에서 곰탕집을 운영하던 젊은 커플은 올가을에 결혼식을 올릴 거라고 했다. 곰탕집이 문을 닫고 나간 자리는 지금도 텅 비어 있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결혼식도 올리지 못했을 그들 소식이 궁금해진다. 문 닫은 점포가 늘어난다. 부산의 대표적인 빵집의 본점이 폐업해 직원 수십 명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최근 소상공인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재확산 이후 매출액이 90% 이상 줄었다고 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전망은 더 어둡다. 소상공인 10명 중 7명이 폐업을 고려하거나 폐업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언택트 시대’가 되며 바빠진 쇼핑몰 등 전자상거래와 배달앱 업체만 빼고 다들 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정부는 고민 끝에 2차 재난지원금 선별 지원을 결정했다. 고위험시설 운영 자영업자와 소득이 급감한 소상공인에 대해서 최대 200만 원을 지원하겠단다. 점포세, 인건비, 공과금 등에 한 번 쓰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게 뻔하다. 지난번 전 국민에게 지급했던 1차 재난지원금 때는 업소마다 매출이 뛰어 활기찬 분위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재정이 어려워 불가피했다고 이해하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를 위해 지역화폐에 최고 25% 인센티브를 활용한 소비촉진 방안을 빠르게 치고 나오는 걸 보면 더 그렇다.

코로나에 매출 격감 폐업 줄이어
선별 지원금 ‘언 발에 오줌 누기’

동백전 가입자 85만 급성장 불구
수수료 정률제 묶여 재정낭비 심해

쇼핑몰·배달앱 결합해야 지속 가능
판 뒤집겠다는 각오로 개선할 필요


지역화폐 동백전이야말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의 ‘고기 잡는 법’이 될 수 있었다. 부산시는 당초 올 사용 금액이 기껏해야 3000억 원 미만이 될 것으로 봤다. 8월 말 기준 가입자 수가 85만 명, 사용 금액이 9200억 원에 달하니 예상 밖의 대성공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내년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20조~30조 원으로 크게 높여 잡고 있다. 민주당 부산시당도 지난 4·15총선을 앞두고 동백전의 발행 규모를 2조 5000억 원으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지역화폐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다.

부산시는 자의든 타의든 어쨌든 지역화폐로 방향을 제대로 잡았지만 지금 딜레마에 빠져 있다. 동백전 운영 사업자 KT와 계약을 정률제(定率制)로 맺어 사용액이 늘수록 수수료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동백전이 3000억 원 사용되면 KT에 주는 수수료가 30억 원이 넘으니, 결코 작지 않은 액수다. 사용 규모가 늘자 수수료율을 조정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률제로 적용되기에 1조 5000억 원이 사용되면 수수료는 1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난다. 부산시 재정도 문제지만, 이렇게 되면 과연 누구를 위한 지역화폐인지 모를 지경이다.

인천은 자꾸 부산과 비교 대상이 된다. 지역화폐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도입한 곳이 인천이다. 인천e음카드는 가입자가 124만이 넘고, 지난달까지 결제 금액이 1조 7860억 원에 달해 동백전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부산시 규모의 지자체에서 지역화폐 수수료를 정률제로 계약한 곳은 거의 없고, 인천시 역시 당연히 정액제로 계약했다. 인천e음카드 운영사업자가 받는 수수료가 10억 원에도 훨씬 못 미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사업자가 수수료 인상을 요구하자 인천시의 담당 공무원은 “당신 회사가 인천시와 계약을 맺어 생긴 공신력은 돈으로는 환산하지 못하는 거다”라며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인천e음카드를 스마트폰에 깔아 봤다. 다양한 상품 구색을 갖춘 쇼핑몰과 함께 건강검진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용 수수료가 없는 전화주문앱이 들어 배달서비스까지 된다. ‘혜택플러스’라고 가맹 업체가 자발적으로 캐시백을 추가해 주는 서비스도 있다. 소비자는 골라서 가는 재미가 있으니 만족도가 높아지고, 가맹점에겐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고 한다. 인천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지역화폐가 예산 지원 없이 자체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동백전도 결제 수단에 불과한 지금 형태가 아니라 쇼핑몰 구축이라는 계획이 처음부터 있었다. 부산시와 KT가 왜 지난 6월에야 뒤늦게 쇼핑몰 개발에 나섰는지, 그 이유는 누구도 모르는 것 같다. 쇼핑몰 개통 예정인 9월이 되었지만 그 뒤 소식은 알려지지 않고, 배달서비스가 포함될 가능성도 희박해 보인다. 부산시는 이와 별도로 10억 원의 예산을 들여 배달서비스가 포함된 공공모바일마켓앱 구축 사업을 새로 추진하겠다고 한다. 지역화폐, 쇼핑몰, 배달앱이 하나로 결합된 플랫폼이 되어야 ‘배달의 민족’과 붙어볼 만한 경쟁력이 생길 텐데…. 부산시가 막대한 수수료를 주면서, 일개 운영사업자에게 끌려 다니는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 소상공인을 생각한다면 부산시는 지금이라도 판을 뒤집을 수 있다는 각오로 개선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부산시의회도 동백전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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