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학을 허약 체질로 만들고 있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영섭 부경대 전 총장 쓴소리

“대학 취업률을 왜 정부가 평가하나요? 그렇게 안 해도 학교와 학생은 취업을 위해 안간힘을 쏟아요. 누구보다 취업이 하고 싶죠. 대학이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겠다고, 평가 지표가 나오면 그걸 맞추느라 정신이 없어요. 정부가 대학을 보호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매일 약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허약체질로 만들고 있어요.”

부경대 첫 연임 총장으로 최근 8년간의 임기를 마친 김영섭(사진) 전 총장이 정부 재정지원사업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김 전 총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는, 그가 국립대 총장을 8년간 하며 보고, 듣고, 겪은 일의 총량과 깊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대학 총장들도 하나같이 쏟아내는 하소연이기 때문이다. 대학들은 요즘, 내년에 있을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 준비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고 있다.

대학 서열화·학문 획일화 조장
정부 재정지원사업이 되레 독
정권마다 평가 잣대도 제각각
대학의 자율성 확보가 급선무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신입생 감소, 10년 넘게 동결된 등록금 등으로 재정 악화를 겪고 있는 대학들은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는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낙제점을 받으면 대학은 정부 재정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재정지원사업 방향이나 대학 평가시스템이 바뀌면서 일관성이 없어요. 그동안의 정부 재정지원사업은 토대를 단단히 하고 한 층 한 층 쌓아 가는 형태가 아니라 작은 탑을 여러 개 만들어 가는 구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큰 탑을 튼튼하게 쌓아야 하는데 기반이 없는 작은 탑이다 보니 자꾸 흔들리고 힘을 받지 못합니다.”

김 전 총장은 특히 ‘대학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지금처럼 자율성이 제한돼 있으면 똑같은 색깔의 줄 세워진 대학밖에 나올 수가 없어요. 대학 자율에 맡겨 두면 다양한 색깔로, 다양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학을 만들 수 있고 세계적인 대학도 나오겠죠.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탄탄해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지금처럼 가물 때 물 주는 식의 재정지원사업은 오히려 내성을 약화시킬 뿐입니다.”

대학 서열화와 학문 획일화를 조장하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와 각종 재정지원사업에 대해서는 그동안 각 단체에서 끊임없이 문제 제기를 해 왔다.

김 전 총장은 8년간 부경대의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용당캠퍼스를 통째로 기업에 개방해 400개 기업을 입주시킨 산학연 혁신캠퍼스 ‘드래곤밸리’는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에 큰 기여를 했다는 평가다. 또 유엔식량농업기구(FAO)와 공동으로 시범사업을 하고 있는 세계수산대학 유치도 김 전 총장 임기 동안의 큰 성과다. 최근 부경대는 기장 동남권 방사선 의·과학 산업단지에 방사선의과학 특성화 대학을 신설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김 전 총장은 8년간의 성과에 대해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열심히 해 준 덕분”이라고 했다.

김 전 총장은 또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미래의 고등교육 시스템이 지금과는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대학 존재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고요. 온라인으로 공개되는 교수 강의는 콘텐츠가 생명입니다. 학문적 오리지널리티가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어요.”

그는 내년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느냐는 물음에 ‘교육과 관련된 봉사’라고 답을 했다. 이현정 기자 edu@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