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기타가 버려진 골목 / 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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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원

진눈깨비 내리는 골목

깡마른 철문 아래 그녀, 덩그러니 앉았다



울림구멍 휘돌아

환하게 퍼지던 목소리

어디에서 끊어졌나, 생의 테두리가 뭉개진 듯

귓가는 물먹은 판지처럼 먹먹하고

어느새 얼굴에도 나뭇결이 깊다



기억 속 줄감개를 조여 허공을 탄주하던 바람과

헌 옷가지에 비닐을 덧댄 창문으로

종종거리며 달려오던 진눈깨비, 저 허깨비들

공명으로 잡지 못한 시간을 새하얗게 덮고 있다



텅 빈 젖무덤 자리

적빈의 쥐꼬리만 드나들고


-조원 시집 중에서-


여기, 줄 끊어진 기타 같은 여자가 골목에 버려진 듯 앉아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녀는 모른다. 탄주해주던 손의 온기가 아직 남아 있는 몸 위로 비도 눈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린다. 이 시는 이제 막 결혼이라는 긴 여정을 시작하려는 여자의 공명통을 텅 울리게 만들었던 내 신혼 무렵의 기억 하나를 소환해 낸다. 긴 복도를 공유하던 복도식 아파트. 그 중앙에 자리 잡은 엘리베이터 앞에 부러진 기타가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한 꼬마가 폴짝폴짝 뛰면서 노래하듯 말했다. 아빠랑 엄마가 싸웠어요. 기타가 부러졌어요. 천진한 아이의 독백이 꽃 핀 봄날의 진눈깨비처럼 귀를 적셨던 그 날의 기억.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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