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나는 전교 1등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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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1891년에 루크 필즈(Luke Fildes)라는 영국 화가가 그린 ‘의사(The Doctor)’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은 의술의 이상적 본질을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의료인문학의 중요한 교육 자료로 세계 각국에서 활용되고 있다.

허름한 오두막의 새벽이다. 죽어 가는 아이가 누워 있고 아이의 부모는 어둠 속에서 비탄에 빠져 있다. 아이 곁에서 밤을 새운 의사의 피곤하지만 근엄하고 인자한 모습이 새벽빛을 받는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의료보장 정책을 시행한다. 미국 정부도 같은 정책을 추진하지만, 의사협회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이때 미국의사협회가 활용한 선전 도구가 바로 이 그림이었고, 약 100만 장의 복사본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 그림은, 원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의료 서비스가 사회의 통제를 받으면 그림 속의 숭고한 의술의 이념이 사라질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짜인 프레임 속에 갇히게 되었다. 의사협회의 전략은 성공적이어서 지금 미국은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건강보험이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최상 의료기술 미국, 방역은 후진국
쿠바, 가난하지만 공공의료 선진적
의료진 진료·수업 거부 상식 괴리돼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미국은 최상의 의료기술을 가졌으면서도 돈 없으면 그것이 그림의 떡인 최악의 분배 시스템을 가진 나라다. 사회화된 의료제도에 저항하기 위해 활용된 그림 속 의술의 숭고한 이념은 이렇게 왜곡되고 오용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코로나19와 같은 공중보건 문제마저도 개인의 비용과 부담으로 해결해야만 하는 방역 후진국이 되었다.

미국과 정반대의 길을 간 사례도 있다.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쿠바는 자본주의의 종주국이며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가진 미국의 턱밑에서 자본의 유혹과 군사적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지켜 온 아주 드문 사례를 보여준다. 50년 이상 지속하여 온 미국의 경제 봉쇄에도 불구하고 주변 여러 나라에 의사를 수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미국의 10분의 1 수준이지만 건강의 중요 지표인 평균 수명은 미국보다 더 길다. 소득과 수명이 비례하는 일반적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는 예외적 사례다. 무척 가난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함께 어울려 춤과 노래를 즐기는 공동체 문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나라에도 어김없이 코로나19가 찾아 왔지만, 미국과 비교하여 그 피해는 훨씬 적다고 한다. 우리의 자가 진단 앱이 하는 일을 ‘뻬스끼사’라고 불리는 찾아가는 문진(問診) 서비스가 대신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 증상을 조사하여 입력하지만, 쿠바에서는 의대생을 포함한 의료인이 직접 방문하여 묻는다고 한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앱에는 입력할 수 없는 일상의 문제들을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무척 번거롭고 시간도 오래 걸리지만, 우리에게는 없는 ‘사람’이란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뻬스끼사’는 코로나를 예방하는 사회 안전망인 동시에 SNS의 기능까지 수행하는 인간 앱이다.

2020년 한국의 의사들은 진료를, 의대생들은 시험과 수업을 거부했다. 필자도 학생 대표로부터 의료인문학 수업에 전원 참여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낮은 임금 속에서도 헌신적으로 일하는 쿠바의 의사들과 코로나가 만연된 마을에서 ‘뻬스끼사’에 나서는 의대생들을 진료실을 떠난 전공의나 휴학계를 낸 의대생과 직접 비교해 비난하는 짓은 하지 말자. 그들은 하늘과 땅만큼 다른 경험치를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전에 진료와 수업을 거부한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의미가 무엇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공공의료에 투입될 의사를 추가로 양성하겠다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게 그들이 내세우는 진료와 수업 거부의 명분이다. 그 명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의사협회의 공식 홍보물은 의사를 두 종류로 나누고 선택하라고 한다. 주어진 선택지는 ‘매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와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그래도 의사가 되고 싶어 추천제로 입학한 공공의대 의사’다. 이 홍보물에는 두 가지가 전제되어 있다. 공부 잘하는 (점수가 높은) 의사가 좋은 의사고 의료의 대상은 공공의 건강과 안전이 아닌 개인의 질병이라는 것이다. 둘 다 우리의 건전한 상식과는 심각하게 괴리된 전제들이다.

여기에는 환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강조해 사회화된 의료를 막아 낸 미국 의사의 전략도 공공의 안전을 지키는 쿠바 의사의 공동체 의식도 없다. 경쟁과 성공에만 매달리는 ‘전교 1등’들이 무섭고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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