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태풍에 속수무책…외부전력 장시간 상실 땐 ‘방사능 유출’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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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마이삭이 부산에 상륙한 지난 3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 바다에 큰 파도가 치고 있다. 김경현 기자 view@

이달 들어 연달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통과하면서 부산 고리원전(고리 1~4호기, 신고리 1·2호기)과 경주 월성원전(월성 2·3호기), 울산 새울원전(신고리 3호기) 등 무려 9기의 원전이 영향을 받았다. 이번 태풍으로 부산에서 적어도 원전 4기의 외부전력이 손실됐다는 점에서 사안이 심각하다. 외부전력 차단은 핵연료봉이 손상돼 녹아내리고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중대사고’의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비상전원도 끊기면 ‘대형 참사’로
부실한 송배전 설비 개보수 필요

■외부전력 상실은 중대사고 ‘시발점’

원자력발전소는 원자로에서 핵분열로 얻은 열로 전기를 생산해 외부로 보내기도 하지만, 역으로 외부에서도 전기를 공급받아 가동되는 구조다. 지진이나 태풍 등 자연재해로 외부전력이 차단됐을 때 이른바 ‘소외전원상실(LOOP·Loss of Offsite Power)’이 발생하면 원자로가 자동 정지하고 비상디젤발전기 또는 대체교류전원 등 비상전원으로 원전에 전기를 공급한다.

만약 이번에 외부전력이 끊어진 원전들이 모두 가동 중이었고, 단 1기라도 모든 비상전원의 기동이 실패한다면 ‘소내정전사고(SBO·Station Blackout)’로 이어진다. 소내정전사고가 장시간 지속한다면 원자로 잔열 제거에 실패해 최악의 경우 핵연료봉이 녹아내리는 ‘노심용융(멜트다운)’까지 벌어진다. 다시 말하면 소외전원상실이 중대사고의 ‘시발점’이며, 소외전원상실 빈도·기간이 증가할수록 ‘노심손상빈도(CDF·Core Damage Frequency)’ 역시 가중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 3월 일본에서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당시 일본 도호쿠 지방에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 원자로가 자동 정지되고 외부전력을 상실해 비상디젤발전기가 기동까지는 성공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쓰나미가 덮치면서 비상전원 시설이 침수돼 원전 격납건물이 수소폭발하고, 원자로가 녹아내려 방사성물질이 대량 누출됐다.



■악몽의 고리 1호기 정전사고

물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강도 높은 지진에 쓰나미까지 발생했던 가혹한 환경이었기에 최악의 참사로 이어졌다. 원전 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비상디젤발전기 △대체교류전원 △이동형발전차 등의 비상전원을 준비해 중대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불과 10년도 채 안된 2012년 2월 9일. 부산 고리 1호기에서는 자연재해도 아닌 사람의 실수로 외부전력이 상실되고 비상디젤발전기 기동까지 실패해 발전소가 완전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한 전력이 있다. 당시 고리 1호기에서 보호계전기 시험 중 직원의 오작동으로 외부전력이 끊어졌다. 이어 비상디젤발전기가 기동돼야 했지만, 2대 중 1대는 수리 중이었고, 나머지 1대는 기동에 실패했다.

만약 완전 정전 상태로 며칠이 지난다면 원자로의 엄청난 열을 식히지 못해 핵연료봉이 녹아내릴 수도 있었다. 더 경악스러운 점은 고리원전 간부들이 사고를 아예 은폐했다는 것이다.



■노후원전 폐쇄로 위험 줄여야

반핵단체들은 이번 사태로 전 세계에 유례없는 다수 원전 밀집지인 부산·울산의 안전도 태풍에 날아가 버렸다고 주장한다. 현재 건설 중인 신고리 5·6호기가 완공되면 부산·울산에 모두 9기의 원전이 가동돼 밀집 원전 고장 사태가 또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18년 10월 언론에 공개된 한국전력 연구용역서를 보면 고리원전에서 후쿠시마와 같은 중대사고가 발생할 경우 피해 액수만 ‘2492조 4000억 원’에 이른다. 동국대 에너지전기공학과 박종운 교수는 “후쿠시마 후속 조치로 원전에 대한 안전성을 보강했지만, 외부전원 등 송배전 설비는 자연재해에 여전히 취약하다”면서 “겪어 보지 못한 자연재난이 올 수도 있지만 원전업계는 타성에 젖어 ‘안전하다’고만 되풀이하는 게 안타깝다”고 일침을 가했다.

황석하·곽진석 기자 hsh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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