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풍도 국가 재난” 입법화 띄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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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풍 예방과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입법화 움직임이 있지만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하다. 지난 2일 제9호 태풍 ‘마이삭’의 영향권에 든 부산 해운대 고층 건물. 부산일보DB

강풍 피해를 더욱 키우는 빌딩풍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빌딩풍 예방과 피해 복구 지원을 위한 입법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지만, 추진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해안가 난개발이 상당 부분 진행된 상태에서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데다, 빌딩풍을 국가 재난으로 규정하고 피해 복구 지원에 대한 법제화를 추진하더라도 피해 지원의 주체와 재원을 두고 논란이 예상된다. 피해를 실증하고 계량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아 이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 하태경, 대표 발의
난개발 상태서 ‘실효성’ 엇갈려
피해 책임 문제도 논란 예상
비용 부담 땐 국민 반감 초래 등
난제 수두룩 법제화 ‘첩첩산중’

■“늦었다” vs “지금이라도”

국민의힘 하태경(부산 해운대갑) 의원은 부산 해운대구 등 해안가 지역에서 발생하는 빌딩풍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지난 9일 ‘빌딩풍 환경영향평가법’(건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은 고층 건물 건축 허가 전에 빌딩풍 환경영향평가를 반드시 실시하고, 건축 허가 신청자는 빌딩풍을 고려한 방풍시설을 설계에 포함시키는 것을 의무화했다.

빌딩풍 피해는 고층 건물이 즐비한 해운대구에 집중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해운대구를 지역구로 한 하 의원이 빌딩풍 이슈를 주도하고 있다.

이번에 발의된 법에 대한 실효성 논란도 있다. 이미 개발 수요가 많은 해운대구와 수영구 등 해안가에는 고층 건물이 대부분 들어섰다. 또 초고층으로 재건축이 추진 중인 아파트가 올 초 건축심의를 통과하며 이러한 예방 대책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반면, 해안가에 큰 개발사업은 더 없겠지만 해안가 자투리땅이 고층 건물로 개발될 여지가 충분한 만큼 지금이라도 빌딩풍 발생 우려가 큰 고층 건물을 꼼꼼히 따져 보고 건축하도록 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피해 지원 책임·비용은 누가?

빌딩풍 피해에 대한 책임 소재와 피해 지원 비용 부담을 따지는 문제도 논란이 예상된다.

해안가 고층 건물에 부딪친 강풍은 돌풍으로 변해 고층 건물에 1차적인 피해를 주며, 강풍이 고층 건물 사이로 빠져나가면서 더 강력해져서 2차적으로 주변 건물이나 시설물에 피해를 주는데, 이 모두 빌딩풍에 의한 피해다. 이를 두고 “고층 건물을 허가한 지자체에도 책임이 있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과 “해안가 고층 건물에서 공공재인 조망권과 일조권을 독점하고 있는 만큼 고층 건물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피해 지원와 관련해서도 많은 시민은 해안가 고층 건물이 조망권, 일조권을 향유하면서도 빌딩풍을 유발해 주변 지역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이유로 “국가나 지자체가 지원해서는 안 된다”며 반감을 갖고 있다. 빌딩풍을 유발하는 고층 건물이 스스로 피해를 복구하고, 주변 지역 피해에 대해서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동진 경성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마린시티의 경우 수변 공간과 건물을 충분히 띄우지 않아 해일 피해가 계속되고 있는데, 많은 시민은 국가가 해일 피해 예방사업을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며 “고층 건물을 허가해 준 지자체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도 맞지만, 국가가 빌딩풍 피해 복구 비용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시민들은 반감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개발이익의 환수 개념이 아직 부족한데, 일종의 공공재인 해안가 조망권과 일조권을 향유하는 고층 건물이 일정 부분 빌딩풍 피해에 대해 책임을 지는 쪽으로도 사회적 논의가 이제는 시작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피해 실증·계량화도 ‘숙제’

전문가들은 빌딩풍 피해를 실증하거나 계량화하는 작업도 쉽지 않아 이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9호 태풍 ‘마이삭’으로 해운대 로데오거리가 큰 피해를 본 것도 빌딩풍 때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상인들은 피해를 호소할 곳이 없는 처지다. 빌딩풍 연구 용역을 수행 중인 부산대 권순철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지금 하고 있는 용역은 고층 건물 이격 거리를 얼마나 둬야 빌딩풍이 줄어드는지, 빌딩풍 피해를 막기 위해 방풍림 등 예방시설을 어디에 얼마나 설치해야 하는지 등 예방 대책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며 “현재로선 빌딩풍 피해가 고층 건물 주변에 발생하면 주변 지역에서 직접 피해를 증명하고, 피해 규모도 수치화해야 하는 상황으로, 어떻게 피해를 실증하고 직접적인 피해 규모를 계량화할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태경 의원은 “빌딩풍을 재난으로 규정하는 법안을 곧 발의할 예정인데, 빌딩풍이 재난으로 규정되면 빌딩풍 예보가 가능해진다”며 “빌딩풍으로 더 큰 피해를 보는 건 고층 건물 주변의 서민들인 만큼, 앞으로 피해 복구 지원과 관련해 더 많은 경험과 사례를 축적하고 사회적 논의도 충분히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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