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코로나 추석', 이 또한 지나가리니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논설실장

‘향아설위’(向我設位)는 ‘사람이 곧 한울이다’(人乃天)만큼이나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조선 말기인 1897년 4월 5일 동학 창도 기념일을 맞아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은 유교 제례 방식인 향벽설위(向壁設位)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다. 차례나 제사를 지낼 때 벽(병풍)에다 위패를 놓고 음식을 차릴 게 아니라 나를 중심으로 위패와 음식을 차리라는 것이다. 조상 부모는 어디 멀리 있지 않고 후손들의 마음속에 있다고 본 까닭이다.

“부모가 죽은 뒤에도 혈기는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요, 심령과 정신도 나에게 남아 있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제사를 받들고 위를 베푸는 것은 그 자손을 위하는 것이 본위이니, 평상시에 식사를 하듯이 위를 베푼 뒤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심고하고, 부모가 살아 계실 때의 교훈과 남기신 사업의 뜻을 생각하면서 맹세하는 것이 옳으니라.” 제물은 지극한 정성이 있다면 청수 한 그릇으로도 충분하며, 절도 마음으로써 하는 게 옳다고 해월은 강조한다.

고향이 못내 그리워도 갈 수 없는
비대면 명절, 올 추석부터 출현

지방정부 중앙정부 할 것 없이
귀성 행렬 막고 온라인 성묘 권장

고령층 건강 위해서라도 자제 마땅
지금은 희망을 향한 인고의 시간


여기서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하늘 위에도 신은 없고, 땅 밑에도 신은 없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는 신이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소설 속 조르바를 탄생시킨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는 ‘20세기 문학의 구도자’라는 명성답게 지금도 널리 사랑받는 묘비명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화하면서 자신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 가까운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은 세월이다. 한 지방에서 다른 지방으로 이동해 만나야 할 처지라면 넘어야 할 지방 간 경계의 문턱도 국경만큼이나 높아졌다. 이런 판에 아무리 수구초심이라지만 고향을 돌아보거나 조상 부모를 찾는 일은 언감생심이다. 여럿이 모여 차례를 지내는 향벽설위가 아니라 혼자서라도 조상에 대한 예를 차려야 하는 향아설위의 시간이다. 이 또한 코로나19에 따른 시절 인연인가.

추석이 2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부가 나서 고향 못 가게 막는 것은 살다 살다 처음으로 겪는 일인 것 같다. 정부는 추석 연휴 때 인구의 대규모 이동이 발생하면 코로나19 감염 확산 우려가 크다며 고향과 친지 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국민에게 요청했다. 오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를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했고, 2017년부터 명절에는 면제였던 고속도로 통행료도 유료로 전환해 발을 묶겠다는 심산이다. 벌초 대행, 온라인 성묘도 권장하고 나섰다. ‘언택트 추석’ ‘비대면 명절’ 의 본격적인 출현이다.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고향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한사코 고향 오지 말아 달라고 손사래를 친다. 근대화 이전 역병이 도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을 어귀에 세웠던 장승이 새로운 버전으로 부활하고 있다. 지자체마다 플래카드나 문자메시지 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역병으로부터 지방을 구하기 위해 삼엄한 경계망을 펼친다. ‘올해 추석은 안 와도 된데이~’(부산시), ‘삼춘! 이번 벌초 때는 내려오지 맙써!’(서귀포시), ‘불효자는 ‘옵’니다’(충남 청양군)….

고속도로를 막고 마을에 들어오지 말라는 현대판 장승을 세우는 것으로 추석 귀성길이 봉쇄되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중앙정부 따로, 지방정부 따로가 없다. 작가 이문열은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라고 쓴 적 있는데 이번 명절부터 소설 제목인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집단 주술에 걸린 인상이다.

하지만 어쩌랴. 한국국학진흥원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돌 때는 설 추석 등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역병이 번지기 시작해 차례를 행하지 못하니 몹시 미안했다”(1582년, 초간일기),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에 제사를 지내지 않기로 결정했다”(1798년, 하와일록), “나라에 천연두가 창궐해 차례를 행하지 못했다”(1851년, 일록).

수도권 일극 체제에 따른 지방소멸로 고향에는 대처에 나간 자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 부산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 대비 노인 비율이 17%를 넘겨 전국 7대 특·광역시 중 단연 최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근 일주일 새 부산 코로나 확진자 중 68%가 60대 이상 고령층이었다고 한다. 고령일수록 치명률이 높아 고향 오면 불효자라는 게 빈말만은 아니다. 5000여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듯,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솔로몬의 잠언을 되새기며 스스로 침잠한 채 하루하루를 희망으로 견뎌 나가야 하는 인고의 세월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forest@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