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택배노조 분류작업 거부, 추석 전 물류대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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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이 17일 조합원 대상 투표에서 95% 이상의 찬성률이 나와 21일부터 택배 분류작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당장 추석 연휴를 앞두고 물류대란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올해 추석 택배 물량은 코로나19 영향으로 30% 이상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부분 파업 결정을 내린 것은 갈수록 열악해지는 노동 환경에 대한 공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합당한 대가가 주어지지 않고, 과로사로 죽어 나가는 택배 노동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전혀 없다는 게 이들의 하소연이다.

장시간 노동, 건강 악화로 잇단 과로사
추가 인력 투입 등 특단의 대책 마련을

택배노조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적으로 12명의 택배 노동자가 사망했다. 7명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았지만 나머지 5명은 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했다. 이 밖에 업무 과중에 따른 지병 악화 등으로 숨진 사례까지 포함하면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이다. 2018년 한 연구에 따르면, 택배 노동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2.7시간, 월평균 근무일은 25.6일로 나타났다. 주말 배송에다 새벽 배송, 당일 배송 등 휴식과 수면을 포기한 채 일하는 택배 노동자의 삶은 지난 8월 14일 ‘택배 없는 날’로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이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여전히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를 장시간 노동으로 내모는 핵심 원인으로 꼽히는 게 배송 전 ‘분류작업’이다. 현재 택배 기사들은 물류 창고에서 자신이 배송해야 할 물량을 주소지별로 직접 분류하고 골라내는 작업까지 도맡고 있는데, 이게 업무 시간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한다. 하지만 배달 건수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체계인 데다 수수료마저 턱없이 작아 사실상 분류 작업에 대한 보상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과로사의 위기에 내몰리는 것이다.

반면 택배 회사는 그동안 엄청난 영업 이익을 쌓아 왔다. 최근 택배 노동자의 노조법상 사용자라는 법원 판결을 받은 CJ대한통운의 경우, 올해 3분기 영업이익이 25% 이상 크게 늘었다. 국토교통부가 추석 연휴를 앞두고 분류작업 인력을 한시적이라도 충원할 것을 권고했지만 택배사들은 묵묵부답이다.

이번 택배 노동자의 작업 거부 사태는 원인도 분명하고 대책도 분명하다. 인력을 보강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택배사가 수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도 분류작업 인력 투입을 외면해서는 곤란하다. 추석 전 물류대란을 막으려면 이 문제부터 진지하게 해결해야 한다. 코로나 시대를 맞아 가장 분주해진 곳이 택배와 의료 분야라 할 것인데, 정부가 택배 분야에 대해서도 의지를 갖고 정책의 추진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 먹고 살려고 일을 하는데 그 일로 사람이 죽어 가는 사고가 자꾸 일어나고 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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