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수의 소설과 세상] 그래서는 안 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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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밀다원시대 문학축제 운영위원장

코로나 팬데믹이 국내에서도 시작된 이후 내 휴대전화를 가장 바쁘게 울린 것은 안전문자 안내였다. 9월 들어서는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을 알리는 긴급재난 문자까지 가세해 가히 ‘문자 폭주’라는 것을 처음 경험하였다. 재난에 대비하라는 지나친 친절과 순치될 정도로 반복되는 코로나 안전문자에 약간의 짜증을 낸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구청 재난센터에서 확진 환자가 다녀간 곳이나 그 동선을 알려 오는 안전문자는 오히려 감사했다. 나의 동선이 그것과 겹치지 않았음을 무척 다행으로 여기는 소시민적 건강 안전 욕구가 앞선 탓이었다.

코로나 정국 ‘알 권리’ 차원 안전문자 폭주
내밀한 사생활 공개, 아슬아슬한 수준도
공권력 빙자한 언어, 가혹한 폭력 될 수 있어
언론 역시 진실·허위의 경계 늘 성찰해야

그러나 확진 환자 동선이 시간별로 안내될 때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하는 우려를 숨길 수 없었다. 시민들 건강권에 따른 ‘알 권리’ 차원과 ‘사생활 보호’라는 두 측면의 충돌은 불가피하게 보였고, 또 어쩔 수 없이 감염자가 된 그들의 고통과 구체적으로 공개된 영업 공간의 피해는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난 2월 부산에서도 한 집단 내에 다수의 양성반응자가 동시에 발생하자, 그들의 상세한 동선이 공개되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불온한 상상력을 자극했던 어떤 해프닝이 있었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두 남녀의 동선이 숙박 시설을 암시하는 모 장소로 겹쳐지면서 묘한 추측과 억측이 나돌게 된 사례였다. 두 남녀는 각각의 격리 기간이 끝나자 결국 서로 결혼할 사이임을 누누이 설명해야 하는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며칠 전, 친지의 음식점이 휴업했다. 주로 단체 손님을 상대로 한 자리에서 근 15년을 이어 온 한식집이었다. 휴업 안내문엔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손님이 줄기 시작해 종업원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수지타산이 점차 악화되더니, 죽어 가는데 목까지 졸린 격으로 지난 4월 확진자가 다녀간 곳이라는 안전문자가 뜬 뒤로는 단골손님마저 발길이 끊겼다고 한다. 방역을 하고 식탁마다 안전 칸막이까지 설치했지만 별무소용이었다. 이제 누굴 탓하며 원망할 힘도, 더 이상 버틸 여력도 없다면서 그 친지는 한숨을 지었다. 2차 재난지원금인 소상공인 새 희망자금 100만 원이 벼랑 끝에 몰린 그의 불운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시민의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는 동전의 양면이다. 어느 한 면만 강조하다 보면 다른 면은 가려지거나 시선에서 사라지게 마련이다. 확진 환자의 정보와 동선을 제한적으로 공개하라는 중앙방역대책본부의 가이드라인이 있었음에도 내밀한 사생활이 필요 이상으로 과도하게 노출되어 문제가 된 사례가 허다하다. 더군다나 코로나 정국이란 특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친 공권력 남용은 개인의 인권과 사생활을 파괴할 수 있는 폭력으로 작동되기 쉽다.

시민의 알 권리를 빙자하여 언어가 유발할 수 있는 가혹한 폭력을 리얼하게 고발한 소설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가 그것이다. 주 인물인 카타리나 블룸이 한 일간지 기자를 자신이 죽였다며 경찰에 자수하는 과정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그녀는 미모를 갖춘 가정관리사로 27세의 이혼녀이다. 사건이 있기 전, 카타리나 블룸은 어느 댄스파티에서 괴텐이라는 남자를 만나 서로 호감을 느껴 그녀의 집에서 함께 밤을 지낸다. 괴텐이 범죄에 연루돼 쫓기는 중이라고 고백하자, 사랑에 빠진 그녀는 그를 은밀한 곳으로 도피시킨다. 이튿날 경찰이 블룸의 집에 들이닥쳐 그녀를 연행하는데, 은행 강도에 살인 혐의까지 받고 있는 괴텐을 언론과 경찰이 계속 추적해 왔다는 것이다. 카타리나가 경찰 조사를 받으며 내밀한 사랑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 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녀의 사생활은 마구잡이로 파헤쳐진다. 경찰은 그녀가 공범이라는 가정 하에 조서를 꾸미고, 추적 보도에 나선 기자 퇴트게스는 그녀가 매우 영리하고 이성적임을 느꼈지만 기사는 ‘얼음처럼 차고 계산적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대중의 호기심 대상이 된 그녀는 점차 ‘살인범의 정부’가 되었다가 ‘테러리스트의 공조자’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자신에게 치근대기까지 한 퇴트게스를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수한다.

이는 공권력과 황색언론의 언어폭력이 한 평범한 여성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잘 보여준다. 알 권리와 표현의 자유가 아무리 소중한 가치라 할지라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진실과 허위의 경계를 무너뜨린 음모론으로 개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일이다. 하인리히 뵐은 에세이집 <언어는 자유의 마지막 보루다>에서도 이러한 언어의 진실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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