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내 친구를 속이다니” 보이스피싱범 붙잡은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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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 기지를 발휘해 보이스피싱범을 직접 붙잡는 사례가 이어져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4시 15분 중구 남포동의 한 햄버거 가게 안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A 씨는 자신을 은행원이라 소개한 50대 여성과 만나 840만 원을 현찰로 건넸다. 이 여성이 기존 대출 상환금을 자신에게 현금으로 주면 저금리로 3000만 원을 대출받도록 해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보이스피싱 수법이었지만 A 씨는 선뜻 돈을 건넸다.

경제난 친구 800만 원 피해에 분개
일행 3명과 조직원에 접근 직접 덮쳐
동의과학대생들도 기지 발휘 범인 잡아

하지만 이 여성이 받은 돈을 세느라 한눈파는 사이 A 씨 주변에 있던 친구 셋이 삽시간에 여성을 덮쳤다. 모든 건 보이스피싱범을 붙잡기 위한 A 씨 일행의 연기였던 것. 영도경찰서로 넘겨진 여성 송금책은 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A 씨 일행이 보이스피싱범을 잡으러 나선 사연은 이렇다. 이달 초 A 씨는 친한 친구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자녀가 셋이나 있던 친구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 ‘저금리로 대출을 받게 해 주겠다’는 온라인 광고에 속아 넘어갔다. 영도구의 한 마트 앞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만난 이 친구는 ‘대출계약 위약금이 부과되니 이를 안 내려면 바로 대출금 800만 원을 상환해야 한다’는 조직원의 말에 속아 800만 원을 건넸고, 돈을 받은 조직원은 곧장 잠적했다.

A 씨는 친구로부터 보이스피싱 조직원 연락처를 받았다. 그리고 “일정 금액을 내면 돈을 빌려준다는 글을 봤다”며 그들에게 접근했다. 보이스피싱 일당은 별다른 의심 없이 A 씨에게 만나자는 제의를 했고, A 씨는 일행 3명과 의기투합해 현장을 덮친 것이다. A 씨는 “예전에도 다른 지인이 보이스피싱에 3600만 원을 잃었다. 당시 잡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에 ‘액땜했다 생각하라’며 위로해 주고 말았는데 또 친구가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하니 ‘정말 이대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앞서 동의과학대 학생 3명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고 속은 척 연기해 직접 조직원을 잡기도 했다.

대학생 B 씨는 몇 달 전 “대출금을 상환하면 저금리 대출을 해 주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보이스피싱임을 직감한 B 씨는 그들과 만나기로 약속한 뒤 지인 2명과 함께 지난 13일 오후 3시 남구 대연동으로 달려갔다. 실제로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쇼핑백까지 챙겨 가는 치밀함을 보인 B 씨는 한 통신사 대리점 앞에서 자금 운반책을 붙잡아 남부경찰서로 인계했다. 9명의 피해자로부터 1억 8000만 원을 받아 조직에 전달한 이 운반책은 사기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경찰은 A 씨와 B 씨 일행 모두에게 표창장과 신고보상금을 전달했다. 부산 남부경찰서 이재길 수사과장은 “전화상으로 금융기관이나 공공기관이라며 계좌이체나 현금을 달라고 얘기하는 경우 100% 보이스피싱”이라면서 “요즘은 문자메시지로 ‘저금리 대출’을 표방하며 URL 클릭이나 앱 설치 등을 유도하는 경우가 많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직접 현금을 가져와 달라’는 요구에는 절대 응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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