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정상화 ‘뒷짐’ 매각만 서두르는 채권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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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을 관리 중인 정책금융기관이 경영 정상화와 조선 산업 기반 유지보다 매각에만 급급해, 차익만 노리는 사모펀드에 회사가 넘어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부산 주요 산업인 조선업 생태계에 치명상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정부와 부산시의 관여가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17일 현재 매각이 진행되는 조선사는 부산 영도에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둔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매각일정이 확정된 곳은 대선조선이다.

수출입銀, 내달 대선조선 인수 결정
동일철강·사모펀드 입찰에 참여
산銀, 이달 한진중 매각공고 목표
사업지 용도변경 불허 공식화 등
부산시 나서 사모펀드 진입 막아야

대선조선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지난 2일까지 실시한 예비입찰에는 부산기업인 동일철강과 영국계 사모펀드 운용사가 입찰에 참여했다. 실사를 거쳐 다음 달 7일 본입찰에서 인수자가 결정된다. 대선조선은 2008년 금융위기 후 업황이 나빠지면서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에 돌입했다. 2016년부터 3년간 임금 10~25% 반납 등 노사가 회사 살리기에 매진한 결과 2018년 흑자 전환(42억 원)에 성공했다. 2019년(113억 원)과 올 상반기(26억 원)까지 흑자를 이어갔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수주가 어려워지며 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이에 대선조선은 최근 채권단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매각 조건에 ‘향후 10년간 조선업을 유지할 것’을 포함시켜 달라고 제안했지만 둘 다 거부당했다. 이에 대해 수은 관계자는 “채권단은 10월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봤고, 내달 7일 본입찰에서 회사가 팔린다면 굳이 지원이 필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매각 조건에 ‘조선업 유지’를 포함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협상을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당장 인수자가 결정될지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독자 생존의 싹이 보이는데도 지원보다 매각 추진이 우선이라는 의미다.

대선조선은 채권단 관리 중이라는 이유로 코로나19로 인한 ‘기간산업 안정기금’ 지원 대상에서도 빠져 있다. 이대로라면 다음 달 급여·외주 노무비·기자재 대금은 체불이 불가피하다. 대선조선 하영수 노조위원장은 “다음 달 흑자부도가 날 수밖에 없다”며 “외주업체 다 떨어져나가고 회사가 망가진 뒤 새 주인이 온들 조선업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했다.

한진중공업 역시 이달 중 매각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17일 한진중공업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따르면, 채권단은 2주도 채 남지 않은 이달 중 매각공고를 목표로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진중공업 역시 급하게 매각만 추진하다 사업장 땅 용도변경을 통한 부동산 개발 차익을 노리는 사모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노기섭 부산시의원은 “한진중공업과 대선조선 둘 다 사모펀드가 아닌 산업자본이 인수해 조선업을 영위해야 지역 조선산업 생태계를 유지할 수 있다”며 “채권단의 일방적 매각 추진에 앞서 부산시 등 관련 기관이 협의해 해당 사업지의 용도변경 불허를 공식화하는 등으로 사모펀드의 진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산조선해양기자재공업협동조합 이병진 본부장도 “국내 중형 조선사의 대표격인 두 회사가 문을 닫으면 중·대형급 연안선박 수주가 해외로 옮겨가고, 부산 조선기자재업체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의 조선·해운 상생 대상에는 메이저 조선사만 포함되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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