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노무현 트라우마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노정현 콘텐츠센터장

그들의 언어는 거칠고 날이 서 있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비판이어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보편적인 국민 눈높이가 아닌 40% 콘크리트 지지층 ‘내 편’만을 의식한 발언들을 경쟁적으로 쏟아 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 복무 시절 특혜 의혹을 방어하는 친문(친문재인) 민주당 인사들 이야기다.

추 장관 아들 특혜 의혹은 그것이 불법이냐 아니냐를 떠나 국민 법정에서는 이미 불공정 사례, 유죄로 판결이 내려진 듯하다. 특히 그것이 국민의 역린인 병역 문제와 관계된 것이어서 힘 없고 백 없는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커져만 가고 있다.

추미애 아들 의혹 국민정서상 유죄
뻔한 검찰 수사결과 신뢰할지도 의문

‘추 흔들기=검찰개혁 방해’ 프레임
밀리면 죽는다, 노무현 트라우마 작용

추, 노 탄핵 앞장 정치이력도 한몫
노 트라우마 벗어나 상식선 수습해야


8개월째 수사를 미적대던 서울 동부지검이 “빨리 수사 결과를 내놓으라”는 여권의 시그널에 국방부를 전격 압수수색하는 등 속도전을 펼치고 있지만 뻔히 예상되는 수사 결과를 곧이곧대로 믿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추석 전 국방부에 전화를 걸었다는 보좌관을 김영란법 위반 정도로 처리하는 꼬리 자르기로 수사를 종결할 것이라는 예상이 그대로 적중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검찰 개혁이 시대적 화두이고 그동안 권력의 시녀라는 오명을 자초해 온 검찰이기에 막강한 권력을 분산시켜 국민의 인권 보루로 환골탈태시키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그 검찰 개혁을 진두지휘할 법무부장관이 꼭 조국이어야 하고 추미애여야 하는가는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여당의 핵심 인사들은 조국 전 장관 때와 마찬가지로 ‘추미애 흔들기=검찰 개혁 방해’라는 프레임으로 국면 돌파를 시도하고 있다.

이렇듯 문재인 정부 핵심 인사들이 추미애 구하기에 올인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이들이 아직도 ‘노무현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검찰의 민주적 통제 방안 마련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를 염원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정권을 빼앗기고 스스로를 폐족으로 칭했던 친노무현 인사들은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하면 어떤 후과가 따라오는지를 똑똑히 목도했다.

노무현을 떠나보내며 그의 친구 문재인은 “이상은 높았고 힘은 부족했다”고 참여 정부를 회상했다. 10년 후 노무현의 죽음으로 운명처럼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탄탄해진 고정 지지층의 힘을 바탕으로 노무현의 염원이었던, 또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검찰 개혁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고 있다.

문제는 공정과 정의를 외쳐 온 문재인 정부가 그에 반하는 특혜와 반칙 정황으로 군에 간 젊은이와 그들 부모의 상실감을 유발하고 있는 인사를 엄호함으로써 스스로 세운 원칙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 역시 ‘법무부 장관 흔들기=검찰 개혁 방해=정권 흔들기’라는 친문 인사들의 고정적인 프레임에다, 밀리면 죽는다는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서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과 연관된 추미애 본인의 독특한 정치 이력도 사태를 키우는 데 한몫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앞장 섰다는 꼬리표가 달린 추미애는 이후 끊임없이 친문 핵심에 편입되기 위해 변신을 모색해 왔다. 마침내 문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인 검찰 개혁의 주무부처인 법무부장관을 맡았으니, 스스로 친문의 적자 조국보다 더한 선명성으로 친노, 친문 세력에게 진 빚을 갚으리라 다짐을 했을 것이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에 나가기만 하면 싸우러 온 사람인 양 오버 페이스를 하는 것도 다분히 친문 세력을 의식한 행위이다. 더 큰 정치를 염두에 둔 추미애라는 정치인의 행위 이면에도 역시 노무현 트라우마가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의 실패를 문재인 정부 성공의 교훈으로 삼겠다면 이는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열등감으로 내 편과 네 편을 가르는 진영의 정치에 갇힌다면 국민 여론은 언제든 등을 돌릴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 보수와 진보의 갈등 종식, 특권과 반칙 없는 세상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여당인지 야당인지 모를 듯한 옹졸한 자세를 버리고 국민의 보편적 상식에 기반한 국민 통합의 정치를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원칙에서 벗어난 추미애 장관 거취 문제를 상식선에서 수습하는 것은 그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jhnoh@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