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시골 의사, 시골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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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지난달 서울대학병원 본관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의대생. 연합뉴스
한 시골 의사가 마을에 중환자가 생겼다는 연락을 받는다. 의사는 환자를 진료하러 나가지만 그의 말은 죽어 있고 눈보라가 그의 발을 가로막는다. 그때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마부는 말 두 필을 의사에게 주는 대신 그의 하녀인 로쟈를 달라고 한다. 의사가 망설이는 동안 마부는 말을 출발시키고 의사는 어느새 환자의 집에 도착한다. 의사는 젊은 환자를 진료하지만 정작 환자는 건강하다. 그러나 환자의 가족들은 강제로 의사의 옷을 벗기고 환자의 옆에 누인다. 환자는 의사에게 자신은 아름다운 상처를 가지고 이 세상에 왔으며, 누구도 자기를 치료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의사는 옷도 제대로 못 입은 채 서둘러 그 집을 나오지만 말들은 제멋대로 달린다. 의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좌절하고 만다. 프란츠 카프카의 <시골 의사>라는 작품 이야기다.

장학금 받는 공공의료기관 근무제
의대생 지원 꺼려 올해도 미달 사태
서울-지역 의료 인프라 불균형 심각

지방 거점 국립대 정부 지원금 규모
서울 소재 사립대에도 훨씬 못 미쳐
재원·시설 빈약한데 지방대 가겠나



정부가 추진한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하며 벌어진 의사들의 파업 사태는 그럭저럭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하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그저 미뤄진 것뿐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더 개운치 못한 기사를 보았다. 지난해부터 정부는 의과대학과 의학전문대학원 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주는 조건으로 일정 기간 지역 공공의료기관에 근무하게 하는 공중보건장학생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의대와 근본적으로는 취지가 같은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장학금 규모도 연 2000만 원이 넘으니 소홀치 않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원자가 미달이라고 한다. 좋은 제도인데 지원하지 않는 이유를 물으니 의대생들은 이렇게 대답하더란다. “등록금 부족하면 대출받으면 되고 생활비 모자라면 과외 하면 되는데, 누가 그 돈 받고 시골 가서 의사 하겠어요?” 하기야 의사들의 평균 연봉이 억 단위를 넘는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하다. 얼마 전 어느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는 연봉 3억에도 지원하는 의사가 없어서 5억이 넘는 연봉을 제시하고서야 의사를 충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부가 공공의대를 설립하겠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골에는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골에 의사가 없는 이유는 이번 사태 때 환자들을 내버려 둔 채 파업에 나섰던 그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시골에는 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은 의사들 이야기를 하려는 뜻이 아니다. 정치권의 시끄러운 소동들 때문에 묻혀 버렸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뉴스가 있다. 서울 소재 사립대학들의 학생 1인당 재정규모는 평균 3000만 원이 넘고 연세대 등 몇몇 대학은 4000만 원이 넘는 반면에 지방 거점 국립대학은 평균 2300만 원에 불과하다고 한다. 물론 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은 재원이 다르고 운영방식도 다르므로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방 국립대학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재정 지원금조차도 서울의 사립대학들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에는 아연실색해진다. 명색이 국립대학, 그것도 지역의 거점대학들인데 어떻게 재단이 따로 있고 등록금도 훨씬 비싼 사립대학들보다 정부의 지원금이 더 적을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의사 파업 때 의사협회에서 “가족이 위급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면 ‘환자가 많은 의대 병원에서 수많은 수술을 접하며 수련한 의사’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지방 공공의대에서 수술은 거의 접하지 못한 의사’ 가운데 누구에게 수술을 맡기겠느냐?”는 게시물을 올렸다가 온 국민의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교육부를 보니 마치 이렇게 묻는 듯하다. “우수한 교수진, 훌륭한 시설, 넉넉한 재정을 모두 갖추고 정부 지원금도 더 많은 서울 사립대학에 가겠습니까, 찌질한 교수진, 낙후된 시설, 빈약한 재원에 정부 지원금도 몇 푼 안 되는 지방 국립대에 가겠습니까?” 시골 의사가 필요한 만큼 시골 대학도 필요한 줄을 교육부가 몰라서야 어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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