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82. 예술적 언어로 조명한 차별·편견, 정은영 ‘정동의 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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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의 막’은 여성국극의 전통을 이어가는 어느 젊은 여성 배우를 밀착하여 추적했다. 15분 38초짜리 단채널비디오 작품이다. 분장을 통해 남성으로 변신해 무대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 주고, 개막 퍼포먼스에서 자신이 여성국극 배우가 된 과정을 관객에게 들려준다. 여성이지만 남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성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배우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48년 여성 국악인들이 올린 ‘옥중화’에서 시작된 여성국극은 195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지만 1960년대 말 서서히 설 자리를 잃었다. 정은영 작가는 2008년부터 ‘여성국극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우연히 여성국극을 접한 것을 계기로 여성 배우들이 성별을 넘나들며 표현해 내는 다채로운 표정과 목소리, 연기에 매료되어 곧 사라질지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화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성국극에 대한 기록과 자료를 꾸준히 수집했고, 전·현직 배우들과의 지속적인 접촉, 인터뷰, 워크숍 등으로 여성국극에 대한 기억을 모았다. 이 과정에서 여성국극을 바라보는 남녀 차별적 시각, 여성국극이 소멸할 수밖에 없었던 남성 중심의 규범 등 사회 상황에 대해 작가는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영상, 사진, 설치, 공연 등의 작업을 선보였다.

남성주의가 잔존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잊혀져 가는 전통을 복구하려는 노력과 국극에 출연하는 여성 배우들의 ‘남성 되기’ 과정을 재연해 남성성과 젠더라는 개념 자체의 해체를 시도하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13년 국내 최고 권위의 미술상인 에르메스 미술상을 수상했다.

정은영 작가의 여성국극프로젝트는 사라져 가는 여성국극에 대한 조사와 연구를 포함한 아카이빙 작업 자체로도 가치가 높지만, 작품을 통해 예술적 언어로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을 예리하게 끌어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류민주 부산시립미술관 기록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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