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젠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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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가수 지코의 노래 가사에 빗대자면 ‘분위기가 겁나 싸하다.’ 임박한 국무총리실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결과 발표 얘기다. 정세균 총리가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9월 말’ 발표를 언급했으니, 검증 작업은 사실상 끝이 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발언 이후 호떡집 불난 듯한 부산·경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동선을 살펴보면 검증 전망에 ‘비상등’이 켜진 건 분명해 보인다.

그전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이낙연 대표가 ‘가덕신공항 지지’ 의사를 밝히고, 청와대가 움직였다는 소리도 들렸다. 7부 능선쯤은 넘었다 싶었는데 착각이었다. 국토교통부의 인천국제공항 일극주의에 대한 맹목적 신념, 조직보호 본능은 강고했다.

‘경고등’ 켜진 김해신공항 검증 발표
부울경 850만 노력마저 수포 위기
가덕신공항 일관된 신념 보였던 文
좁은 논리에 갇혀 수수방관 안될 말

정 총리의 느닷없는 “대통령 공약은 아니다” 발언, 여기에 부산 의원들이 ‘말은 맞다’고 편을 들고 나선 것 또한 불길한 예감을 키운다. 여권 인사들은 “결론은 아직 모른다”면서도 검증위는 총론적 의견을 제시하려 하고, 부울경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는 내부 기류를 공통적으로 전하고 있다. 결국 검증위가 ‘김해신공항에 결정적 하자는 없다’는 종합 결론을 제시하려 하지만, PK 여권이 안전분과 내부의 이견 등을 토대로 어떻게든 가덕신공항의 불씨를 살려보려는 게 현재까지의 상황으로 보인다.

이게 맞다면 가덕신공항의 동력은 크게 꺾일 수밖에 없다. 너무 허탈한 일이다. 자그만치 20년이다. 24시간 운영 가능한 안전한 공항 하나를 얻기 위해 부산이 20년을 외쳐왔다. 이번에는 경남과 울산까지 850만이 힘을 모았다. 역대 가장 강력한 지지층을 가진 대통령의 반복된 공약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에서 하나의 사업을 이토록 오랫동안, 간절하게 원한 적이 있었나?

가덕신공항은 동남권 시민의 안전은 물론 지역의 미래 비전, 나아가 수도권에 대응할 부울경 메가시티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인프라다. 그런 가치 판단은 배제한 채 이미 발표된 정책이고, 덜 안전해도 쓸 수는 있다는 기계적·관료적 논리 따위로 무산시킬 일이 아니다.

그런 황망한 일을 또 겪는다 생각하니 ‘그때 그랬더라면’하는 몇 장면이 아프게 떠오른다. 신공항 목소리를 키우려 TK(대구·경북)를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후보의 신공항 공약에 가덕도를 못박았더라면 문제가 이리 꼬이진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그건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고 현 시점에서 가장 아쉬운 건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다. 사실 부울경은 가덕신공항의 깃발을 다시 올린 뒤로 문 대통령이 한 번의 지지의사도 밝히지 않았지만 크게 섭섭해하지 않았다. 전 정부 정책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미뤄 배려하면서, 그래도 이심전심으로 물밑에서 방향을 잡아 줄 걸로 믿었다.

그건 문 대통령이 가덕신공항에 얼마나 강한 의지를 보여왔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0여 년의 신공항 논쟁에서 일관되게 가덕도의 손을 들어왔다. 2012년 대선 당시 신공항 논쟁 때에도 가덕신공항을 명확하게 밀었고, 4년 뒤 총선에서는 아예 “국회의원 5명만 뽑아준다면 가덕신공항을 착공하겠다”고까지 했다. 부산은 6석으로 넘치게 화답했고, 부울경 지방권력까지 여권의 손에 쥐어줬다. 공약집에 가덕신공항 다섯글자가 없다고 공약이 아니라는 주장은 시민 기만이다.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사실 끝까지 안나왔으면 하는 말이었다. 시민의 열망으로, 논리와 비전으로 관철시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부울경 100년 대계를 위한 세 번째 도전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데, 발표된 정책을 뒤집을 수 없다는 국토부의 오도된 신념에,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좁은 시야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다. 문 대통령이 김현미 국토부장관을 불러 “동남권 관문공항 문제는 내가 잘 안다. 국토부 내부 논리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한 번이라도 설득했다면 국토부가 저렇게까지 나올 수 있었을까.

만약 문 대통령의 가덕신공항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부울경 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물론 문 대통령은 나라 전체의 대통령이지만 850만 부울경 시민이 요구하고, 한때 자신도 강력하게 동의했던 사안을 수포로 돌리려면 그 정도 배려는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명색이 대한민국 제2도시에서 20년 동안 공항 하나 우리 뜻대로 짓겠다는 요구마저 일개 부처에 의해 간단히 묵살되는 나라에서 국가균형발전·지방분권이 가당키나 한 얘기냐고.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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