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호소, 북한 뿌리치지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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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23일 제75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한반도 종전선언을 통한 평화 정착에 힘을 모아 달라고 국제사회에 지지와 협조를 호소했다.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한국전쟁 발발 70년이 되는 올해, 한반도에 남아 있는 비극적 상황을 끝낼 때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외교적 선언은 종전선언 당사국인 북한과 중국·미국을 향한 것이기도 하지만,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협력을 촉구했다는 사실이 눈길을 끈다. 결국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공허한 메아리 안 되게 철저한 준비를
북한도 대화의 문을 열고 적극 응해야

알다시피,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세 번째 만난 지난해 6월 이후 북·미 관계는 꼬이고 꼬여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답보 수준이 아니라 오히려 이전보다 후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6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은 한반도 평화가 얼마나 허약하고 불안한 상태에 처해 있는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사례라 할 것이다. 북한은 9·19 남북 평양공동선언 2주년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통일·안보 라인 교체 이후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적극적으로 대북 협력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북한의 태도는 변한 게 없다. 대화의 문을 닫은 북한도 북한이지만, 대통령 선거가 11월로 다가온 미국도 대외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낮은 게 현실이다.

대화의 계기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하여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종전선언 관련 언급이 공허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북·미 협상이 장기 교착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없으면 현실적인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종전선언은 북한의 비핵화 실천에 대한 상응 조치로 거론돼 온 만큼 더욱 그렇다. 물론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한 의지를 대내외에 널리 보여 주는 것이 무용할 리는 없다. 그러나 대화 재개 동력을 만드는 실질적인 방책 없이는 이는 환상에 불과할 뿐이다. 종전선언 논의가 허공의 메아리가 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고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것일 터이다. 정전을 넘어 종전의 마지막 협정문의 서명자는 당연히 북한 당국이다. 그런 만큼 북한이 문 대통령의 제안에 어떤 식으로든 응답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국제사회 역시 문 대통령의 다국적 협력 제안을 적극 지지해 주길 기대한다. 문 대통령은 북한에 제안한 바 있는 방역 협력을 다자 틀로 확대한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도 제안했는데, 북한이 남북 협력 호소를 더 이상 뿌리치지 않길 바란다. 이 제안이 결실을 이룬다면 남북관계의 물꼬를 터서 북핵 해법을 찾는 다자안보 체제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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