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실종’ 사실 즉각 알렸으면 참변 막았을 수도
입력 : 2020-09-24 19:30:32 수정 : 2020-09-28 10:42:39
안영호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2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 참석, 연평도 인근 실종 공무원 북한 피격 사건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실종됐던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탑승했던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 연합뉴스 |
북한군이 서해 최북단 소연평도에서 실종된 남측 공무원 A(47) 씨를 북측 해상에서 총격 사살한 뒤 기름을 부어 불태운 것으로 확인되면서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군은 북측이 A 씨를 발견한 정황을 인지했지만, 이후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당국의 대응이 부적절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최초 발견 후 5~6시간 후 총격 사망
아무런 조치 안 한 軍 책임론 불가피
통일부 “북측과 연락할 수단 없다”
군 ‘월북 의사 표명 식별’ 근거 안 밝혀
가족 “자진 월북할 사람 아니다” 참담
■“만행 저지를 줄 몰랐다” 안이한 군
24일 국방부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소속 어업지도선 공무원 A 씨는 구명조끼를 입고 부유물에 올라탄 채 22일 오후 3시 40분 북한 수산사업소 선박에 최초 발견됐다. 북측 선원이 방독면과 방호복을 착용하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상태에서 A 씨로부터 월북 진술을 들은 정황을 군은 포착했다.
이로부터 6시간 정도 지난 오후 9시 40분 북한군이 단속정을 타고 와 A 씨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어 오후 10시 11분 북측 해상에서 시신에 기름을 부어 불태웠으며, 이런 정황은 우리 군 연평도 감시 장비에서 관측된 북측 해상의 ‘불빛’으로도 확인됐다.
군은 A 씨가 북측 해역에서 북측 선박에 발견된 정황을 확인했음에도 이후 피격까지 약 5∼6시간 동안 북측에 남측 인원임을 알리는 등의 조처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 나와 “북한이 이렇게 천인공노할 일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을 못 하고 정보를 분석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군이 사실상 지켜보기만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22일 밤 A 씨의 사망 정황이 확인된 직후인 23일 오전 1시께 서욱 국방장관과 박지원 국정원장,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외교안보 수장들이 청와대로 소집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23일 오후에 군이 발표한 내용은 ‘실종자가 발생했으며 생사는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국이 북한에 ‘실종 사실 통보와 관련 답변’을 처음으로 공식 요구한 것도 23일 오후 4시 45분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북측과 연락할 수단이 없는 상태”라고만 했다.
■당국 “월북 한 듯”
군 당국은 A 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 씨가 구명조끼를 입은 채로 부유물에 올라타 북측 해역에서 발견이 된 점과 선박에 신발을 벗어 둔 점, 북측 발견 당시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식별된 점 등이 판단 근거다. 정보 당국 역시 월북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을 어떻게 식별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밝히지 않고 있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A 씨가 실종된 어업지도선 내 침실을 조사한 결과 그의 휴대전화와 유서 등은 없었지만 개인 수첩과 지갑 등은 확보해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해경 역시 실종 당시 A 씨의 신발이 선박에 남아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자진 월북 가능성도 계속 조사할 계획이라고 했다. 40대 가장의 월북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방부가 일단 (월북으로)주장하고 있는데 진상은 더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실종 공무원 월북 징후 안 남겨
A 씨는 2012년 공무원 임용 후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에서 일해 왔다. 해당기관 직원에 따르면 A 씨는 4개월 전 이혼했으며, 동료 직원 다수로부터 돈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법원으로부터 급여 가압류 통보를 받아 A 씨가 심적 부담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수부는 24일 온라인 브리핑에서 A 씨 가족관계에 대해서는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A 씨가 동료들과 별다른 문제 없이 지냈고, 심리 변화 등 특히 주목할 만한 일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A 씨 가족들은 자진월북할 사람이 아니라며 월북 보도에 "참담하기 그지없다"고 밝혔다. 송현수·민지형 기자 oas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