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적인 위안보다 고정관념 해체가 소설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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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요산김정한문학상] 수상작 ‘떠도는 땅’ 김숨 소설가




제37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김숨(46). 수상작 <떠도는 땅>은 1937년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역사를 소환한 무게 있는 소설이다. 우리 문학이 써야 할 이야기를 쓴 것이며, 한국 문학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고려인 강제 이주 역사 다룬 소설
좁은 열차 배경으로 색다른 서술
쓰고 싶어 쓰다 보니 소설 20권
1950년대 부산 배경 작품 구상

제37회 요산김정한문학상을 수상한 김숨 소설가.  백다흠 제공

- 강제 이주 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강제 이주 열차’라는 강력한 이미지가 저를 사로잡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뿌리 뽑혀 낯선 곳에 이식 당한 고려인들, 디아스포라적인 그들 삶의 아픈 상징이 강제 이주 열차였다. 또한 그것은 우리 삶의 강력한 메타포일 것이다.”

- 열차 칸이라는 좁은 공간 설정은 답답하지 않나? 그리고 꼼꼼히 읽지 않으면 흐름을 놓칠 수도 있는데?

“열차 칸은 사방이 막혔으나 움직이는 공간이어서 소설적으로 더 호기심 가는 공간이다. 그리고 소설이 편한 것, 익숙한 것, 상투적인 위안을 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논리적이고 고정된 사고를 해체하고 파괴하며 긴장시키는 작품이 진짜 독서의 충만감을 줄 수 있다.” 그런 글쓰기로 그는 강제 이주에 대한 ‘두꺼운 서술’에 이르고 있다.

<떠도는 땅>을 4년 전 잡지에 처음 연재했을 때 화자는 ‘금실’이었다. 김숨은 “그때는 하고 싶은 얘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며 “개작하면서 열차에 타고 있는 모두에게 화자 자격을 부여하니 비로소 여러 목소리가 제 안으로 들어와 저마다의 사연을 구구절절 들려줬다”고 했다.

- 수상작인 올해의 <떠도는 땅>까지 15년간 무려 소설책 20권이나 낸 추동력은?

“쓰고 싶은 이야기가 왔을 때 밀쳐 두지 않고 곧바로 몰두해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아,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다. 생각과 글의 결부·일치는 곧 삶과 글의 하나됨 같은 거다. 그는 “청탁을 받고 글을 쓰지는 않는다”고 했다. 영감이 왔을 때 바로 쓴다. 그리고 30~40매를 몰아 쓴다. “글쓰기 고통이 ‘그렇게 쉽사리’ 극복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산책도 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나 맛있는 식사도 함께하고 여행을 가기도 한다”라고 했다. 취재를 위해 18일 오후 9시 40분 통화했을 때 그는 산책 중이었다.

- 독일 제발트의 소설 <이주자들>을 좋게 언급한 적이 있다. 책 읽기를 말하면?

“독서의 즐거움에 들이는 시간은 점점 늘고 있다. 제발트 얘기가 나왔으니, 그의 <토성의 고리>를 올해 가장 재밌게 읽었다. 지루한 부분이 있는 소설이, 그래서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내내 제자리를 걷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문득문득 들게 하는 소설이 제게는 좋은 소설로 생각되는데 <토성의 고리>가 그렇다. 최근 니체의 <바그너의 경우, 우상의 황혼…>을 읽고 있는데, 그의 글이 이상한 방식으로 제게 위안 같은 걸 준다.”

- 2016년 출간한 소설 를 기준으로 삼을 때 ‘개인’ ‘가족’에서 ‘역사’ ‘현실’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했다고 보인다.

“저는 광장이라는 공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역사에 무지한 편이다. 는 쭉 관심을 가져온 ‘미술 복원’을 공부하다가 발견한 주제였다. 소설 속 복원 중인 운동화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이한열 열사의 운동화였다. 역사적인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쓴다는 게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제대로 공부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 명>이라는 위안부 소설을 쓰게 되었다. 그 소설이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와의 인연을 만들어 주었다. 덕분에 두 분을 인터뷰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증언 소설을 쓸 수 있었다. 제가 의도한 전환이 아니라, 제게 온, 쓰고 싶었고, 쓸 수 있었던 소설들을 쓰고 책으로 펴내다 보니 전환이 저절로 이루어졌다.”

- <떠도는 땅> 이후 작품 계획은?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에서 정착하는 과정에 관해 쓴 초고 상태의 원고가 있다. <떠도는 땅> 초고를 쓰고 연이어 썼던 원고다. 자료 조사도 더 필요하다. 그리 머지않은 날 들여다보게 되지 않을까, 그때는 중앙아시아에도 가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는 ‘1950년대 부산’에 대한 관심으로 어느새 ‘부산’에도 이르러 있었다.

“1950년대 부산을 배경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 생겨서, 지난해 11월 부산을 찾았다. 부산은 매우 흥미로운 소설적 공간이었다. 부산을 오가며 꽤 즐겁게 썼다. 어느새 1년여가 지났고, 우연하게도 최근 그 소설을 다시 꺼내 이야기를 더하고 덜어 내는 작업을 하면서 다시 부산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려고 하는 때, 요산 선생님 이름으로 수여하는 상을 수상하게 됐다.”

울산 방어진에서 태어난 그는 대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으며, 지금은 서울에서 산다. 그는 “나이 들수록 더 잘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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