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르포] 택배기사 김 모 씨의 지옥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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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같은 분류작업 끝나면 한순간도 못 쉬고 배달”

“매일 힘들고 고단합니다. 쉼 없이 일해도 직장에선 무시당하기 일쑤고, 생활 형편은 하루하루 나빠지고 있습니다.”

택배기사의 하루는 늘 무겁고 고되다. 하루 안에 배달해야 할 택배 물량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일요일을 제외한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이 평균 13시간에 달한다. 분류하고 배송하는 작업 중에는 마음 편히 쉬거나 식사를 할 시간도 쉽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고된 노동의 대가는 가혹할 만치 쓰다. 그렇다 보니 올해 들어서만 택배 노동자 11명이 과로 등으로 숨지거나 생활고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삶의 무게에 쫓겨 살아가는 택배기사의 ‘고된 하루’를 쫓아가 보았다.

오전 7시 서브터미널로 출근
컨베이어 벨트 위 물량과 씨름
아침 식사는 편의점 김밥·우유
하루 평균 13시간, 300여 개 배송
“한겨울도 땀범벅, 온몸 만신창이”

21일 오전 7시 부산 동구 좌천동 A택배사 ‘서브터미널(택배 분류 작업장)’. 택배기사 3년 차 김 모(39) 씨의 일과가 시작됐다. 소위 분류작업이다.

이날 오전 분류작업에서 김 씨를 비롯해 택배기사 수십 명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 끝없이 쏟아지는 택배 물량 속에서 자신에게 할당된 물량을 찾느라 거의 뛰어다닌다. 이들은 지나가는 박스에 적힌 송장번호와 이름을 확인해 자신의 물량을 찾는다.

이날 오전 분류작업에서 김 씨에게 할당된 택배는 100여 개. 벌써 오전 9시 30분이 넘었다. 김 씨는 아침 식사를 챙길 틈도 없이 자신의 1t 탑차로 배송에 나섰다. 잠깐 편의점에 들러 김밥과 우유를 재빨리 샀다. 김 씨는 주로 차 안에서 식사를 때운다. 근무 중 제대로 식사를 한 게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날 오후 1시께 김 씨의 오전 배송이 마무리됐다. 휴식은 없었다. 곧바로 서브터미널 택배 분류 작업장으로 돌아왔다. 다시 오후 분류 작업이 시작됐고, 분류가 끝나자 배송이 진행됐다. 오후 배송 건수는 오전보다 많은 200여 건이다.

배송이 조금이라도 지연되거나 차질이 생기면, 택배기사가 책임을 진다. 이 같은 불공정한 시스템 탓에 택배기사는 마음 편할 때가 없다. 배송 물량 건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더 벌려면 쉴 새 없이 움직여야 한다.

특히 업무 시간 절반 이상을 보내는 분류작업은 ‘지옥’처럼 느껴진다. 코로나 19 이전에는 하루 평균 412건이던 분류 물량이 코로나 이후에는 560건으로 크게 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 씨는 “분류작업이 택배기사 과로사의 주된 원인이다”며 “기사 상당수는 오전 배송 동안 오후 물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쓴다. 극단적 선택을 한 창원 택배기사는 돈 때문에 분류작업을 혼자 하다 보니 늘 폭력적인 업무량에 시달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업무는 오후 8시 30분께 마무리됐다. 하루 13시간 이상의 고강도 노동의 대가는 월평균 430만 원 정도이다. 그러나 차량 기름값, 보험료, 유지비, 부가가치세 등을 모두 자비로 부담한다. 실제로 남는 돈은 월 평균 300만 원 미만이다. 김 씨는 “택배 건당 수수료가 660원 정도로 떨어졌다. 최대한 많은 물량을 최단 시간에 배달해야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뛰어다니다 보니 한겨울에도 온몸에 땀이 밸 정도입니다. 늘 온몸이 성한 데가 없다 보니 쉬는 날에는 거의 누워 지냅니다. 가족에게 미안하고 스스로 참담합니다.”

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무거운 발걸음 아래로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불평등이 짙게 깔렸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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