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부산에서 빗물이 공중부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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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진 사회부장

올 9월 초 한 유튜브 동영상이 눈에 띄었다. 제9호 태풍 마이삭이 불던 날, 부산 마린시티 한 고층 아파트에서 찍은 것이었다. 태풍이 고층 건물을 휘감는 소리가 대단히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기대했던 ‘빗물 공중부양’은 다소 실망스러웠다. ‘태풍에 내리는 비마저 거꾸로 올라가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건물 유리창에 앉은 빗물 방울이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비 오는 날 차창에 앉은 빗물이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았다.

이 같은 초고층 건물의 빗물 공중부양은 빌딩풍 때문이다. 빌딩풍은 상당히 새로운 말이다. 바람이 고층의 빌딩을 지나면서 더욱 세지는 현상을 말한다. 초고층 건물의 경우 강한 태풍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안전하게 설계된다. 태풍이 불 때 건물이 흔들려 불안할 수는 있지만, 건물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건물에 부딪힌 빌딩풍은 강한 돌풍을 일으켜 소음을 발생시키고 건물 외장재를 파손한다. 이렇게 날리거나 떨어진 물건이 보행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위로 내리는 빗물’ 동영상 등장
태풍에 초고층 빌딩풍이 만든 현상

올해 엘시티 주변 태풍에 초토화
태풍 속도가 빌딩풍에 배나 빨라져

관련 법·대책 마련 추진 ‘시의적절’
빌딩풍 예방 건물 설계부터 적용해
새 디자인 건물로 관광자원화 기대


2019년 기준 전국 5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은 112개다. 부산에 전국에서 가장 많은 37개가 있다. 이 가운데 25개가 해운대에 몰려 있다. 그래서인지 부산이 특히, 해운대는 빌딩풍의 원조나 원산지(?)처럼 느껴진다.

부산 해운대 지역은 9월 초 마이삭과 하이선, 연이은 태풍에 큰 피해를 보았다. 매년 태풍 피해의 단골 지역이었던 마린시티 보다 올해 입주한 부산 최고층 엘시티 주변의 피해가 컸다. 엘시티 건물 외벽 일부가 뜯기고 유리창이 파손돼 밑으로 떨어졌다. 엘시티 고층에 사는 일부 주민들은 태풍 소리에 놀라 로비에서 잠을 잤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더 큰 날벼락이 떨어진 곳은 엘시티 뒤쪽이다. 달맞이언덕에 위치한 한 아파트의 창문이 아래위로 줄줄이 깨졌다. 주민들은 바람이 아니라 바람에 실려 온 자갈이 유리창을 깼다고 했다. 엘시티로부터 직선거리 100m 남짓 떨어진 ‘해운대 로데오 거리’는 태풍 다음날 아수라장이 됐다. 가게에서 떨어져 나온 간판 등 시설물 파편이 거리를 덮었다. 유리창 수십 장이 파손됐다. 상인들은 ‘엘시티가 생긴 뒤 바람이 더 세어졌다’며, 빌딩풍 피해임을 주장했다.

엘시티 주변 피해가 큰 것은 빌딩풍 속도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올 9월 7일 태풍 하이선 당시 부산대 빌딩풍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이날 해상 풍속은 23.4m/s 정도였는데, 엘시티 건물 일대 12개 지점에서 측정한 풍속은 최대 50m/s에 달했다. 마린시티 24개 지점에서 측정한 풍속은 30m/s 정도였다. 마린시티에서는 태풍 속도가 약 30% 빨라졌지만, 엘시티 주변에서는 배 이상 빨라졌다. 바람의 속도가 빠를 수록 피해가 큰 것으로 보인다.

부산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부산지역 재난발생 현황 및 대응 방안’에 따르면 부산에서 2008년부터 2017년까지 32회의 풍수해가 발생해 13명의 인명 피해와 1827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재산 피해로만 보면 부산이 전국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풍수해 피해에 ‘빌딩풍’ 재해가 새로 들어갈 참이다. 9월 말 하태경 국민의힘 부산시당위원장이 ‘빌딩풍’을 태풍 홍수 등과 같은 통상의 재난으로 규정하는 ‘빌딩풍 재난법’을 대표 발의했다. 빌딩풍에 따른 피해가 발생했을 때 태풍 피해와 같이 국가 등이 피해자에게 보상해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여기에 건축 심의 때 빌딩풍의 피해를 살피는 ‘빌딩풍 환경영향평가법’도 발의됐다. 두 법안 모두 시의적절하다 하겠다.

여기에 부산시와 부산대 산학협력단도 올해부터 3년 계획으로 ‘빌딩풍 위험도 분석 및 예방/대응 기술 개발 구축계획’ 마련에 돌입했다. 부산 해운대 지역의 공간과 기상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빌딩풍 실측 데이터를 확인해 빌딩풍 위험 정보 지도와 서비스 기술 개발을 목표로 한다. 특히 빌딩풍 비산물 위험도를 분석해 예방 대응 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세계 초고층 건물인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163층, 829.8m)는 상층부로 올라가면서 건물 폭을 줄였다. 영국 런던 스트라타 아파트(43층)와 일본 도쿄의 NEC 슈퍼타워(44층)는 건물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이같이 빌딩풍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건물을 글로벌 명소로 만들었다. 부산시는 건축 심의 때 빌딩풍은 줄이고 건물의 아름다움은 살리도록 건물 외관 디자인을 최대한 엄격히 심사해야 한다. 또 새로 지어질 초고층 건물이 부산의 얼굴이 되고 새로운 관광자원이 되도록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야 할 때이다. 바람구멍을 품은, 새로운 부산의 랜드마크가 될 아름다운 초고층 건물의 등장을 기대해 본다. 



ksci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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