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대한 ‘국민’ 탄생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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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탄생 / 송호근




<국민의 탄생>은 사회학자 송호근(포항공대 석좌교수)이 “3·1운동은 한국 근대사에서 국민의 탄생을 확증하는 대사건이었다”는 점을 해명한 책이다. 어쩌면 다 아는 얘기다. 그러나 국민의 탄생, 이라는 눈부신 국면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3가지 공론장 형성으로 가능했다는 매우 새로운 논지를 전개한다. 공론장 형성과 분석이 이 책 내용의 전부다. 그래서 부제가 ‘식민지 공론장의 구조 변동’이다.

1910년대 조선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일제의 철권통치로 이른바 암흑 시대였다. 여기에 ‘매체(문예) 공론장’, ‘종교 공론장’, ‘저항운동 공론장’이 점진적으로 항진한다. 공론장 3각 편대의 힘은 1919년 ‘기회의 창’이 열리자 한꺼번에 거침없이 쏟아져 역사적인 3·1운동으로 분출했다는 거다.

1910년대 일제 철권통치 속 항일운동
저항운동·문예·종교 공론장 중심 불붙어
안창호·이광수·최남선 시대적 역할 커
제국주의 속 식민 통치 꾸짖은 ‘대사건’ 


부산의 3·1운동 재현 모습. 3·1운동은 한국 근대사에서 국민이 탄생한 대사건이었다.  부산일보DB

첫째 3가지 공론장 중 저항운동 공론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을 빙 둘러싼 ‘환상형(環狀形) 공화(共和)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간도, 연해주, 상하이, 일본, 미주에 걸쳐 형성된 ‘공화주의 독립운동 네트워크’가 그것이다. 이를 결성하고 견고하게 만든 주도적 인물이 바로 도산 안창호였다. 물론 연해주에 최재형, 간도에 이회영 이상룡, 상해에 여운형 등이 있었으나 그 모든 세력과 운동의 방향을 국민국가와 공화제 건설로 확고히 수렴시킨 이가 안창호였다. 기점은 1907년 신민회가 만들어진 때부터였다. 송호근에 따르면 1907~1911년 형성된 안창호의 인적 네트워크와 사상적 대안이 없었다면 1910년대 국외 망명지는 분열했을 거고, 이후 3·1운동 같은 민족의식의 대규모 분출도 불가능했을 거라고 한다. 그만큼 안창호는 한 시대가 필요로 했던 걸출한 인물이었다는 거다.

둘째 저자가 매체(문예) 공론장에서 주목하는 이는 이광수와 최남선이다. 모든 언론이 재갈 물렸던 1910년대는 소문과 풍설의 시대였다. 여기에 출구와 균열을 낸 이가 두 사람이다. 이광수는 1917~1918년 소설 <무정>을 통해 구질서를 벗어던진 주체적 개인, 즉 시민을 출현시켰다. 최남선은 문학에서 역사로 가서 조선의 역사적 기원과 정체성을 정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광수가 출현시킨 ‘근대 의식’에 최남선의 ‘민족’이 접합되면서 뭔가 일어날 태세였던 것이 3·1운동 전야의 문예 공론장 상황이었다고 한다.

셋째 3가지 공론장 중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종교 공론장이었다. 문예 공론장이 무형이었다면 종교 공론장은 교리 조직 신자를 갖춘 유형의 존재였다. 특히 천도교와 기독교는 이른바 ‘시민 종교’의 역할을 하면서 ‘캄캄한’ 1910년대 중반에 신자 수 150만 명의 인적 기반을 갖추었다. 천도교는 최제우 최시형 사상의 연속선 위에서 박인호의 인내천 사상으로 자기 갱신하면서 광범한 향반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다. 기독교는 1910년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사회 조직 자체였다. 천주교는 공소 1000여 곳, 개신교는 기도실 2000여 곳에 이르면서 지방과 도시를 막론하고 광범한 조직을 구비하고 있었다. 천도교의 향반 네트워크와 기독교의 지방과 도시를 아우른 광범한 조직을 기반으로 3·1운동의 폭발적 분출이 이뤄질 수 있었다.

마침 1918년 후반부 식민지 철권통치에 균열이 일어났다. 새 총독 부임으로 억압이 느슨해졌고, 1차 대전 이후 세계정세 변화와 전쟁 특수에 배제된 노동자와 빈농의 불만이 팽배했다. 게다가 1918년 9월에서 1919년 2월까지 세계적 독감의 공격으로 조선에서 무려 14만 명이 죽어 민심은 흉흉했던 것이다. 드디어 고종의 승하가 3·1운동에 불을 붙였던 거다. 3·1운동은 제국주의 역사에서 전무후무하게 준엄히 식민 통치를 꾸짖은 세계사적 사건이었다. 4월 상하이에서의 대한민국과 공화정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책은 한국 근대를 해명한 <인민의 탄생>(2011), <시민의 탄생>(2013)과 더불어 14년간에 걸친 저자의 ‘탄생’ 3부작 연구를 마무리 짓는 거란다. 애초 3부는 ‘현대 한국 사회의 탄생: 20세기 국가와 시민 사회’로 예고됐었는데 ‘국민의 탄생’으로 축소됐다. 송호근 지음/민음사/408쪽/2만 8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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