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6시간 12분 꽉 채운 미나마타병 환자의 절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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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회 BIFF] ‘미나마타 만다라’ 하라 가즈오 감독



28일 본보 취재진과 '줌'으로 만난 하라 가즈오 감독.  BIFF 제공


“미나마타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를 카메라 앞에 서게 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일본 정부가 미나마타병을 공식병으로 인정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본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까지 계속 카메라를 들겁니다”.

일본의 다큐 거장 하라 가즈오(75) 감독의 말이다. 하라 감독은 2018년 ‘센난 석면 피해 배상소송’으로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찾은 데 이어 2년 만에 신작 ‘미나마타 만다라’로 다시 BIFF를 찾았다.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일본 현지에 있는 하라 감독과 28일 만났다.

70대 일본 다큐 거장의 15년 추적기
미나마타병 둘러싼 거대한 세계 담아
뇌 손상으로 소통 능력 상실하는 병
한 마을 범위 넘어서는 민주주의 문제


하라 가즈오 감독의 '미나마타 만다라'는 미나마타병을 둘러싼 하나의 세계관을 다룬 영화다. '미나마타 만다라' 중 한 장면.  BIFF 제공


제목을 ‘미나마타 만다라’로 붙인 이유에 대해 그는 “미나마타병 병중론(증상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서 이야기가 시작해 의학자와 환자가 교류하는 모습 같은 인간관계를 담고 싶었다”며 “만다라가 하나의 세계를 의미하는데 미나마타병을 둘러싼 거대한 세계를 영화에 담았다”고 설명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에서 집단 발병한 병이다. 인근 화학공장이 메틸수은을 바다에 방류했고, 메틸수은이 포함된 조개와 어류를 먹은 주민에게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메틸수은이 뇌의 감각 신경에 손상을 줘 결국 대화 같은 소통 능력을 상실하게 되는 무서운 병이다.

이 영화는 하라 감독이 15년 동안 촬영했고, 편집하는 데 5년이나 걸린 러닝타임 6시간 12분의 대작이다. 그는 “촬영이 이렇게 오래 걸린 건 미나마타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가족이 언론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심했기 때문”이라며 “최대한 많은 사람을 취재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 30년 이상 배상 운동을 지원하고 있는 사람까지 다방면으로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느 정도 사례가 모인 데다 더 이상 일본 정부의 미나마타병에 대한 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시점이 되어 세상에 내놓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하라 감독은 정부를 상대로 싸우는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를 다수 찍었다. 그는 “일본이 패전한 1945년 일본에 민주주의가 들어온 시기에 내가 태어났다”며 “패전 후 경제적 풍요로움이 찾아왔고 부패가 시작됐다. 이후 일본 사회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느냐 하는 의문에서 항상 출발한다”고 전했다.

한국을 예로 들며 하라 감독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는 모습을 보며 국민들이 큰 에너지를 만드는 장면을 봤다. 아직 일본에는 그런 큰 에너지가 없다. 한 사람의 서민이자 빈곤을 경험한 세대로서 맞서 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내가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다”고 말했다.

미나마타병은 일본의 한 지방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몇몇 피해자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게 하라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인간관계의 기본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1 대 1 커뮤니케이션이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상실하면 민주주의가 성립할 수 없다”고 말했다. “메틸수은은 남극에서 포획된 고래나 참치뱃속에서도 발견됐다. 미나마타병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 (소통 능력이 상실 돼)그런 역사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차기작에 대해서 하라 감독은 “2~3가지 주제를 놓고 피사체가 되는 분들과 촬영 협의를 시작한 단계”라며 “다음 작품은 2시간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러닝타임이 6시간이 넘는 작품은 아닐 것”이라며 위트있게 마무리했다. 거장의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대답이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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