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F] “표류가 해외 민간 교류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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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과거 해외 민간 교류의 유일한 통로였다. 당시 교류를 추정할 수 있는 것이 해상 표류기인 표해록이다. 학계에서는 표해록을 여행기이자 고난과 역경을 보여 주는 역사서로 표현하기도 한다. 제14회 세계해양포럼(WOF) 특별세션3 ‘해양인문학, 표류 아시아를 잇다’에서는 표해록을 기반으로 과거 아시아에서 일어난 교류의 흔적을 찾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특별세션3 표류, 아시아를 잇다
표해록 기반 과거 교류 흔적 탐색

이날 세션 발제에 나선 4명의 전문가들은 모두 표해록의 역사적 가치에 주목했다. 서광덕 부경대 인문사회과학연구소 교수는 “17세기 이후 표해록이 늘어나는데, 배를 띄웠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항해를 시작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표류한 뒤 살아남아 기록을 남겼다는 점, 그리고 항해를 금지한 해금령이 발효된 시기 해외 무역이 되지 않아 위장 표해를 통해 상업 행위가 이뤄진 것도 추측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696년부터 1697년까지 1년간의 일본 홋카이도 지역 표류기인 을 발표한 김강식 한국해양대 교수는 “당시 표류로 홋카이도에 가게 되면서 물물교환을 통해 에도지역 물품이 조선으로 들어오게 된 경우도 있다”며 “표류 이후 송환이 관건인데 조선과 일본이 통신사로 우호적 관계에 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이지항 일행은 송환되고 난파선까지 가지고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표주록과 부산의 인연도 눈길을 끌었다. 이지항 표주록에서 이지항은 부산을 출발해 영덕으로 가는 과정에 표류해홋카이도 지방으로 가게 됐고, 1819년 야스다 요시카타라는 규슈 남단 중급 무사가 조선 표류를 하게 된 에도 다대포, 우암포 지역에 요시카타가 한 달여 머문 기록이 있다.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는 “당시 해안을 그린 그림은 역사적 사료로서 가치가 크다”며 “필사 과정, 요시카타의 이후 행적 등에 연구도 이어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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