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불어오는 찬 바람, 안전한 풍어를 함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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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94세 나이로 작고한 국내 최고령 현역 의사인 한원주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이 뉴스에 소개된 후 계속 뇌리에 맴돌았다.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연초부터 코로나19 등으로 심신이 지친 우리들을 이 가을에 위로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생을 주어진 사명을 오롯이 수행하고 아름다운 퇴장을 하는 모습은 무릇 이런 훌륭한 사람에게서뿐만 아니라 해경 함정에서도 볼 수 있다.

부산 1501함 이야기이다. 이 해경함정은 1500t급으로 1987년 건조되어 34년 동안 지구 20바퀴에 해당하는 거리를 항해하면서 바다의 파수꾼으로 충실한 역할을 수행하고 지난 5일 퇴역하였다. 특히 퇴역을 불과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지난 9월 11일, 통영 먼바다 해상에서 발생한 6000t급 선박 화재 사고 시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여 인명구조 작업의 숭고한 마지막 임무를 수행하였다.

당시 화재는 오전 3시 51분에 발생하었고 위치는 통영 매물도 남쪽 57km 떨어진 해상으로, 당시 60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승조원들은 다행히 인근 해상에서 작업하던 예인선에 신속히 옮겨 타서 안전하게 구조될 수 있었으며, 1501함이 시작한 진화작업을 필두로 속속 도착한 해경 경비함정과 해군 등 유관기관 선박들도 총력 진화에 나섰다. 화재 선박 진화는 인명구조와 더불어 기름 유출로 인한 해양오염을 방지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당시 화재 선박에도 연료유 234t이 실려 있어 진압이 늦었더라면 대규모 해양오염이 발생할 개연성이 있었다.

어선과 같은 선박 화재는 날씨가 추워지는 가을과 겨울 성어기에 선내 난방 목적의 화기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발생 우려가 크다. 일반적으로 어선은 선미에 조타실이 있고 그 아래에 주방, 선실 그리고 기관실이 있는 구조이다.

화재는 주로 주방이나 기관실에서 발생하는데, 연기와 불길이 선실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 선체 구조이기 때문에 선원들이 잠들어 있는 새벽에 화재가 발생하면 큰 인명피해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선원들이 가까스로 빠져나온다고 하더라도 해수의 온도, 즉 수온이 낮으면 버티기 힘들다. 수온이 0℃ 이하이면 대개 30분 이내에 즉시 사망한다.

지난 10월 6일 새벽 2시 54분 흑산도에서 26km 떨어진 해상에서 발생한 어선 화재도 주방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선원들이 선실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매우 위험한 조건을 모두 갖춘 긴박한 사고였으나 13명의 선원이 모두 구조되었다. 목포해경의 필사 구조작전으로 인명피해를 최소화하였고 선원들의 자체 진화 노력과 인근에서 조업하던 어선들이 한달음에 와준 덕분이기도 하였다.

금어기가 풀리고 본격적인 조업이 시작되는 요즘, 어군을 쫓아 어선은 점차 먼바다로 나아간다. 수온은 낮아지고 바다는 자주 거칠어지며 살을 에는 한파가 몰아치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어선에서도 전열기 등 난방 기구를 사용한다.

대부분의 어선은 가볍고 속력이 잘 나가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으로 만들어져 급속히 불길이 확산하는 특성을 보인다. 거센 불길을 피해 조난신고를 하지 못하고 바다에 뛰어들거나 주변에 함께 조업하는 선박이 없어서 발견이 늦어지면 저체온증으로 목숨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선박에 화재가 발생하면 즉시 신고하고 비치된 소화기로 소화 작업을 한 후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갑판에 모여 마지막 순간에 바다로 탈출하여야 한다. 우리 해양경찰은 모든 가용 세력을 동원해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도 예방이 최우선이다. 올해도 안전한 풍어를 기원한다.

/김홍희 해양경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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