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경험치가 또 하나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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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열렸던 올해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달 30일 무사히 끝났다.

세계적인 영화제로 성장한 BIFF는 25년간 여러 고비를 맞았지만, 올해는 전대미문의 바이러스 재난으로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영화제 개최 결정에 애를 먹었다. 올해 BIFF가 원래 계획했던 개최 일정을 한차례 연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번민을 짐작할 수 있다. 영화제 준비 과정에선 단기 스태프의 3년 치 시간 외 수당을 지난해 해소하면서 발생한 적자로 임직원들 월급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었다. 코로나19 여파로 협찬금도 예년보다 부족했다. 영화제 개최 기간엔 부산시가 내년도 민간 행사 보조금 예산을 30% 삭감하는 방향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와 아연실색하기도 했다.

코로나 속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
관객 성원과 영화인 신뢰 확인 성과
역경 극복한 경험도 다시 한번 축적
더 단단한 영화제로 성장할 계기돼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올해 BIFF가 제대로 끝맺음을 할 수 있었던 건 관객들의 변함없는 지지와 성원이 큰 몫을 차지했다. 이번 BIFF의 유효 좌석 점유율은 92%로 역대 최대 수준이었다. 현장 관객 수로 보자면 18만에서 20만 명에 이르던 예년보다 훨씬 미치지 못하는 2만 135명이었지만, 코로나19라는 상황을 고려한다면 선전했다는 평가다. BIFF는 올해 유효 좌석 25%의 티켓만 판매할 수 있었고 작품당 1회 상영 같은 제한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겠다. 관객들이 만드는 영화제인 커뮤니티비프는 총 46회 차 상영 중 37회가 매진되기도 했다. 비대면으로 진행된 포럼비프와 아시아콘텐츠어워즈 같은 다양한 행사에 온라인 접속 횟수도 3만 이상을 기록해 기대를 웃돌았다.

이는 ‘BIFF는 볼만한 영화를 상영한다’는 영화팬들의 오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근 한 퀴즈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유명 커피점 대표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스페셜티를 마셔본 경험이 부족하다. 품질 좋은 커피를 마셔봐야 다음에 좋은 커피를 알 수 있다.” 품질 좋은 맛을 기억하는 경험이 쌓여야 좋은 커피를 구별하고 찾을 수 있다는 말인데 공감한다.

결국 문화도 경험이 중요하다. 남포동 극장가나 해운대 영화의전당 야외 극장에서 BIFF 상영작을 보고 감동을 받은 관객이 다시 영화제를 찾게 된다. 그 관객의 경험치는 개인과 가족을 넘어 사회적으로도 축적되고 확대된다. 매년 BIFF가 관객에게 감동을 전할 작품을 고민 끝에 선택하고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영화제가 제대로 진행될 수 있었던 건 BIFF가 25년간 국내외 영화계에 다져 온 신뢰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관객과의 만남(GV) 행사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올해 한국 영화 초청작은 모두 GV를 진행했고 해외 초청작까지 포함하면 영화제 상영작 중 70% 정도가 GV를 열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이지만, 국내 영화배우와 감독들은 기꺼이 BIFF를 지원하고 관객을 만나기 위해 GV에 참석했다. BIFF 측은 비록 성사되진 못했지만, 자가 격리 2주를 하더라도 영화제에 참석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아시아권 감독이 10명 이상이었다고 밝혔다. 유럽 감독 중에서도 영화제 참석 의지를 보인 감독이 있었다. 외국 감독 중 상당수가 온라인 화상회의 프로그램 ‘줌’으로 진행한 GV에 나서 관객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특히 올해 BIFF 아이콘 부문 초청작 ‘시티홀’을 연출한 다큐멘터리 거장 미국 프레데릭 와이즈먼 감독은 아흔이라는 나이에도 온라인으로 GV에 나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올해 BIFF는 관객의 열렬한 성원과 국내외 영화인들의 신뢰를 확인했다는 또 다른 성과를 낸 셈이다. 이는 영화제의 외적인 성장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BIFF를 지탱하는 단단한 기반이기 때문이다.

역경은 어려움을 주지만 동시에 기회도 준다. 이겨 낸다면 한층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BIFF는 그동안 태풍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 다이빙 벨 사건 등 큰 고비를 마주했지만, 잘 넘어왔고 올해도 그랬다. 코로나라는 큰 난관 속에서 영화제를 운영한 경험을 쌓았고, 온라인 형태의 진행 방식에 대한 이점도 확인했다. 이용관 BIFF 이사장이 영화제 폐막 기자 회견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해 새로운 형태를 선보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확보했다”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제가 또 다른 새로운 경험치를 획득했다는 말이어서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노하우가 축적되면 영화제 수준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 내년에도 더 성장하고 새로워질 부산국제영화제를 기다린다. 


/김종균 문화부장. kjg1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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