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목소리, 제발 들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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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랙티브 페이지(brother.busan.com)가 열렸다.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서 실행 버튼을 누른다. 골목에서 딱지치기하는 아이들 장면을 시작으로 33초짜리 애니메이션이 기괴한 배경 음악과 함께 전개된다. 사냥감을 찾는 듯 어슬렁거리는 ‘부산시 부랑인아 선도차’. 그 장면 뒤에 이어지는 붙잡힌 이들의 외마디 비명과 절규들.

가 10개월에 걸쳐 형제복지원 인권유린 참상의 기록을 집대성한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완성해 2일 독자께 선보인다.

형제복지원 ‘살아남은 형제들’
본보 ‘인터랙티브 페이지’ 열어
생존자 인터뷰·현장 사진 등 담아
피해 참상의 기록들 ‘집대성’

‘형제복지원 참상 영상 기록관’ 성격의 이 페이지엔 피해자 33인의 생생한 인터뷰와 함께 당시 현장 사진, 진상조사 보고서 등 각종 기록물이 담겼다. 인터랙티브 콘텐츠는 보고 듣는 뉴스로 문서, 영상, 사진, 음악, 애니메이션, 그래픽 등을 활용해 독자들에게 하나의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기에 디지털 시대 ‘종이신문의 진화물’이라고 부른다.

페이지에 들어가면 당시 형제복지원의 각 시설 현장을 하나하나 클릭해 들여다볼 수 있다. 건물배치도를 누르면 참혹한 당시 사진과 함께 참사를 증언한 피해자들의 음성 해설이 흘러나온다. 이용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 시대 현장에 갇혀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또 다른 코너에서는 이름만 입력하면 수용자 수만 명 중 지금까지 확보한 일부 입·퇴소자 명단(2500명)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형제복지원 참상 관련 기록도 한눈에 볼 수 있다. 피해자 한종선 씨가 직접 그린 ‘형제원 만화’와 ‘가족만화’가 애잔하다.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이후 33년. 국가는 이제서야 진상조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전국 각지에 흩어져 숨죽인 채 살아온 피해자들. 이들에겐 얘기를 들어 줄 ‘귀’, 대변해 줄 ‘입’이 필요했다. 부산일보가 피해 생존자들을 직접 만나 구술 영상 제작 프로젝트 ‘살아남은 형제들’을 진행하고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만든 이유다.

올 2월 초, 첫 증언자 신재현(가명·60) 씨를 만났다. “제발 우리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했다. 이후 10개월에 걸쳐 33명과 마주했다. 피해생존자 27명, 관계자(야학교사) 1명, 시민·학계 전문가 5명이다. ‘살아남은 형제들’ 시리즈를 통해 3600분, 20만 자 분량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빠따’, 몰매, 피, 성폭행, 시신, 매장…. 애써 묻어둔 핏빛 단어들이 하나둘 실체를 드러냈다. 방황, 우울, 트라우마, 빈곤, 자살…. 기억의 상처는 덧나고 곪아 그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었다.

‘우리 안의 그들’이 어렵게 입을 뗐다. 진실의 조각을 맞추는 일은 이제 ‘우리 모두’의 몫이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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