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서 만든 영화 ‘도굴’ 천재 도굴꾼 역할 이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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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맛마저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했어요"

8일 기준 박스 오피스 정상을 달리고 있는 영화 ‘도굴’에는 흙 맛으로 유물의 위치를 척척 알아내는 ‘천재 도굴꾼’이 나온다. 그가 주로 활동하는 구불구불한 ‘땅속’ 세계와 널따란 ‘지상’ 세계엔 흥미로운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로 부산 곳곳에서 촬영한 장면이라는 것. 기장 옛 도예촌 부지와 부산항 연안여객터미널, 엠에스페리 뉴스타호 등 부산 정경을 영화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도굴’을 들고 영화마을 나들이에 나선 박정배 감독과 배우 이제훈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카페에서 각각 만났다.

배우 이제훈(36)의 연기 변신이 날로 새롭다. ‘학생’(파수꾼·건축학개론)부터 ‘군인’(고지전), ‘독립투사’(박열)에 이르기까지 맡는 배역을 넉넉히 소화한 그가 이번엔 유쾌한 ‘천재 도굴꾼’으로 돌아왔다. 2017년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이후 3년 만의 스크린 나들이다. 이번 영화를 한 뒤 “넉살이 좋아졌다”는 이제훈을 만나 영화 이야기를 나눴다.

지치고 힘든 순간 극복하는 건
‘영화’라는 치료제가 있기 때문

영화는 타고난 천재 도굴꾼이 땅속 유물을 파헤치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이제훈은 이 작품에서 흙 맛만 보고도 유물 위치를 척척 알아내는 도굴꾼 ‘강동구’를 연기했다. ‘도굴 팀’을 진두지휘하는 동구는 말 많고 꾀도 많은 캐릭터. 능글맞고 천연덕스러운 미소를 짓거나 재치있는 대사를 툭툭 던질 땐 그간의 묵직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제훈은 “평소 성격과 정반대인 인물이라 걱정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더 재미있고 신나게 연기했다”며 “촬영에 들어가기 전 신나는 음악을 들으면서 감정을 끌어올려 ‘동구화’ 되려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번 작품을 한 뒤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전에는 상대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는 스타일이었다면 지금은 말이 많아졌죠. 주변에선 어릴 때 개구쟁이 같은 제 모습이 나왔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영화 속 강동구는 황영사 금동불상을 시작으로 고구려 고분 벽화, 선릉에 묻힌 조선의 보물까지 ‘판’을 키워 나간다. 전동 드릴로 벽을 뚫고 땅굴 흙을 삽으로 퍼내고, 흙탕물에 뒹구는 건 다반사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법한데 의외의 답변을 내놓는다. 이제훈은 “땅굴이나 수중 액션 신 등 육체적으로 힘든 장면이 많은데 마음은 즐거웠다”며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지금 생각하니 그 순간도 다 추억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재미난 촬영 뒷이야기도 곁들인다. 영화에 나오는 ‘흙’과 ‘시멘트 가루’에 비밀이 있다고. 그는 “흙을 맛보는 장면이 있는데 사실 제작진이 아이스크림 ‘돼지바’의 겉면을 긁어 준비한 것”이라며 “흙먼지나 시멘트 가루도 콩가루나 선식 같은 거로 만들어 주셨다. 촬영하면서 달콤하고 고소한 기분을 만끽했다”고 웃었다.

이제훈은 자타 공인 ‘영화 마니아’다. 본업인 연기는 물론이고, 지난해엔 영화 제작까지 활동 폭을 넓혔다. 단편 영화로 인연을 맺은 양경모 감독, 김유경 PD와 함께 영화 제작사 ‘하드컷’을 차리고 첫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 말고는 관심이 가는 게 없었다”며 “작품 활동을 하면서 촬영이나 편집, 음악 등에도 전보다 관심이 많이 생겨 궁극적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고 했다. 감독의 다채로운 시선을 담은 다양한 영화들을 제작하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고. 이제훈은 “배우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도 결국 ‘영화’다. 지치고 힘든 순간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치료제”라고 했다.

내년이면 배우 생활 15년을 맞지만 그의 ‘열일 행보’는 계속된다. 넷플릭스 작품인 ‘무브 투 헤븐: 나는 유품정리사입니다’와 드라마 ‘모범택시’ 등을 통해 대중을 찾을 예정이다. 작은 바람도 덧붙인다. “영화 인생은 길다고 생각해요. 악역이나 사이코패스 연기도 해 보고 싶어요. 앞으로도 새로운 모습 많이 보여 드릴게요.” 남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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