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부산시가 초래한 '무늬만 지역화폐' 동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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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동백전을 사용한다면 캐시백 혜택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혹시 아는가? 동백전은 시민들에게 캐시백을 주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는 것을.

애초에 동백전은 지역 내 소비로 발생한 돈을 지역 내에서 순환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런 ‘설계의 이유’를 시민들은 잘 알지 못한다. 자동차를 탄다고 설계까지 알 필요는 없듯이, 동백전을 사용한다고 설계도를 파악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조금이라도 궁금하거나 지역에 일자리가 많아지길 바란다면, 캐시백 요율 말고도 도입 취지에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지역화폐는 수도권으로 돈과 사람이 막대하게 몰리는 기형적인 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한 ‘발칙한 의도’에서 시작됐다. 지역민들의 소비를 유발시킨 후 그 돈을 지역 내에서 돌도록 만드는 것이 기본 구조다. 즉 시민들은 자신이 지불한 금액보다 캐시백만큼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되고, 그 돈은 지역 소상공인에게 흘러간다. 이후 지역 소상공인들이 이 돈으로 지역 상품 구매나 세금을 납부하도록 만들어 지역 안에서 돈을 순환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이 구조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지역민과 지역기업, 기초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장치가 필수적이다.

동백전이 출범한 지 1년. 결과를 놓고 보면 동백전은 ‘무늬만 지역화폐’ 수준이다. 동백전 플랫폼은 충전과 캐시백 지급 기능은 있지만, 지역 내 돈이 재순환되는 구조나 지역 공동체 참여와 관련한 장치는 거의 전무하다. 이 정도 수준이면 굳이 KT에 연간 수수료 100억 원을 주면서까지 운영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다. 시민들이 지역 업체에 돈을 쓰는 데에 그치는 지역화폐라면, 별도 운영수수료를 물지 않았던 재난지원금 지원 방식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당초 동백전 설계도를 살펴보니, 지역 내 선순환 구조나 지역 공동체 강화를 위한 장치들이 들어 있었다. KT와 계약기간 만료를 앞둔 현재까지 이런 장치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고 있다. 설계 의도대로 제품이 나오지 않으면 제작사를 닦달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건만, 동백전 설계도를 그린 부산시는 왜 껍데기뿐인 이 플랫폼을 그냥 놔두는 것일까?

그 의구심은 지난달 말 열린 동백전 중간용역보고회에서 확실하게 풀렸다. 운영대행사 선정을 둘러싼 부산시와 일부 전문가 그룹의 갈등이 한몫하고 있었지만, 더 문제는 부산시의 인식이었다. 부산시 담당부서의 고위 관계자가 지역화폐 도입 자체에 부정적인 견해를 드러낸 것이다.

물론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지역화폐의 효과에 의문을 가질 수는 있다. 하지만 동백전을 운영하는 고위 책임자의 의구심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지난 1년간 1000억 원이 투입된 동백전은 지역화폐의 가능성을 확인할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것이다. 설계대로 해 보지도 않고, 해당 부서장이 효과 운운하는 것은 무책임한 행태다.

현재 동백전은 운영대행사 선정을 앞두고 있다. KT가 재선정되든, 다른 기업이 선정되든 중요한 것은 부산시의 의지다. 부산시가 지역화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운영을 주도하지 못하면, 동백전은 또다시 캐시백 퍼주는 플랫폼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국비를 지원하는 통로쯤으로 시의 역할을 한정한다면, 막대한 예산은 그저 ‘포퓰리즘 비용’에 그칠 것이다. 
/송지연  경제부 차장. s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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