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헤매는 노동자·밤잠 못 자는 사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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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현장

일감이 없어 가동이 중단된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독자 제공

“노동자는 일자리가 없어 거리를 헤매고, 업주는 빚 독촉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웁니다. 내년이 지금보다 더 어려울 거라는데, 어떻게 버텨낼지 막막합니다.”

체감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진 9일 오전 경남 거제의 한 조선기자재협동화공단. 철판을 자르는 요란한 절삭기 소음과 번뜩이는 용접 불꽃으로 어수선해야 할 작업장이 고요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감돈다. 대형 블록 제작에 필요한 각종 부자재로 발 디딜 틈 없던 야드는 황량한 들판으로 변했다. 한쪽엔 용접기와 족장 사다리가 산더미처럼 쌓였고, 멈춰 버린 지게차엔 먼지가 수북하다. 조선소의 상징과도 같은 골리앗 크레인은 고철덩이가 돼 버렸다.

적막감 감도는 공장 황량한 야드
대형 조선소 협력사들 ‘생존 절벽’
100여 곳 휴·폐업 5000명 실업
특별 경영안전자금 등 대책 시급

거제시는 최근 '거제형 조선업 고용유지 모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돌아올 수주 회복기에 대비해 국비 등 877억 원을 투입해 4개 분야 9개 지원 사업을 병행하며 6000여 명의 숙련인력을 지킨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당장 일감이 없는 상황에 실효성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등의 불을 끌 단기 처방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협동화공동 입주기업 대표 A 씨는 “최근이 최악이라던 2016년보다도 심각하다. 공장이 멈추고 숙련공이 빠져 나간 상태에서 내년에 일감이 풀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 도시’ 경남 거제에 때 이른 경제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해 온 대형 조선소가 코로나19 악재와 국제유가 폭락 여파로 ‘수주 절벽’에 맞닥뜨리면서 영세 협력사는 ‘생존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영국의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 3분기 기준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은 975만 CGT로 지난해 같은 기간 2003만 CGT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이 가운데 한국 조선 3사가 수주한 물량은 전체의 27%인 262만 CGT(81척)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할 때 56.3%나 감소한 수치다. 남은 일감을 나타내는 수주잔량 역시 지난달 기준 1842만 CGT로 연초보다 21.1% 감소했다. 조선사별 건조능력을 고려하면 길어야 1년 6개월을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문제는 협력사다. 이미 일감이 바닥난 지 오래다. 올해 들어 거제지역 조선협력사 500여 곳 중 100여 곳이 휴·폐업했다. 이로 인해 5000여 명이 실업자 신세가 됐다. 여기에 앞으로 최소 8000여 명이 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성내협동화공단협의회 이성신 회장은 “경영 위기에 직면한 협력사에 대한 특별경영안전자금 지원 등 정부 주도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진 기자 mj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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