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가을을 걷다…포항 내연산 경상북도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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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단풍이 절정이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산을 타면 되겠지만 단풍만 즐기고 싶은 사람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 경북 포항 내연산에 있는 경상북도수목원에 다녀왔다. 산 중턱에 있는 수목원이라 편안하게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장소다.

눈길 닿는 모든 곳 노랗고 붉어
전망대 올라 굽어본 황금빛 물결
한 폭의 그림 같은 연못 ‘삼미담’
아무렇게나 사진 찍어도 ‘인생샷’

■전망대에서 동해를

경상북도수목원의 단풍터널을 산책하는 방문객들. 아래 작은 사진은 수목원의 다양한 내부 모습.










수목원 입구부터 노랗고 빨갛다. 이미 나뭇잎도 많이 떨어져 길 위에서 떠돌고 있다. 평일이어서인지 관람객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래서 더 여유가 있다. 마침 오늘 가을 햇살은 전어 맛만큼이나 고소하고, 은행알만큼이나 달콤하다.

수목원 입구에 숲해설전시관이 있다. 바로 옆을 보면 전망대로 오르는 안내판이 보인다. 전망대를 오르내리는 길 풍경이 또한 일품이다. 가을 중에서도 ‘고독한 가을’을 느낄 수 있는 길이 아닐 수 없다.

전망대를 오가는 길은 두 갈래다. 계단으로 가는 길과 콘크리트 길이다. 당연히 조금이라도 편하게 가려면 조금 멀지만 콘크리트 길이 낫다. 하지만 최상의 코스는 콘크리트 길로 올라갔다가 계단 길로 내려오는 것이다. 계단 길 풍경을 빼먹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변은 온통 노란색이나 갈색으로 물든 나뭇잎뿐이다. 아직 가을인 줄 모르는 철없는 일부 나무만 조금 푸른색을 띠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동자조차 노랗게 물들어 세상이 노래질지도 모르겠다.

콘크리트 길바닥은 온통 낙엽이다. 조심스럽다. 바싹 잘 말라 있어 조금만 방심하면 미끄러진다. 길을 오르다 잠시 뒤를 돌아본다. 탄성이 절로 터진다. 온 세상이 황금으로 뒤덮인 모양이다. 나뭇잎 사이로 힐끗 보이는 파란 하늘을 빼면 온통 노란색 천지다. 태어나서 이렇게 노란 세상은 처음이다.

그다지 힘들지 않게 10분 정도 걸어 전망대에 도착했다. 미세먼지가 시야를 가리기는 하지만 대단한 풍경이 힘들게 올라온 산행객을 기다린다. 산 너머 멀리 수평선이 보인다. 처음에는 지평선인가 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수평선이 맞다. 오른쪽으로 산행 코스로 유명한 삿갓봉이 보인다. 정면으로는 덕천리, 덕성리, 필화리 들판이 펼쳐져 있고 그 너머에 월포해수욕장이 자리 잡고 있다. 공기가 조금 더 좋았더라면 시원한 동해를 산속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전망대 바닥에 앉아 편안하고 시원하게 맑은 공기를 마신다. 사람들이 올라오면 마스크를 착용하고 내려가면 다시 벗기를 반복한다. 귀찮지만 그래도 이렇게 좋은 공기를 실컷 마실 수 있는 게 어딘가.

내려가는 길은 계단 길이다. 올라올 때와 마찬가지로 노란 나뭇잎이 계단 길을 뒤덮고 있다. 힘든 길을 올라오는 사람들의 입에서는 헉헉대는 소리가 들린다. 고불고불한 길은 제법 내려가는 재미가 있다. 사진을 찍으면 꽤 좋은 그림이 나온다. 나무 덱이 잘 만들어져 있어 내려가기는 매우 편하다.



■세상을 빨갛게 물들이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명상의 숲 인근 화장실로 가려는데 빨갛거나 노랗게 물들었거나 아직 파란 단풍나무가 발길을 가로막는다. 아무리 볼일이 급해도 이런 절경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가을철 단풍놀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편인데 이래서 사람들이 단풍을 좋아하는 모양이라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 심어진 단풍나무가 삼색의 조화를 자랑하며 산행객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아예 새빨갛게 물든 잎을 한껏 매단 나뭇가지를 축 늘어뜨린 단풍나무는 노골적인 추파를 던진다.

‘여기서 사진 한 장 안 찍고 가면 후회할 텐데.’

빨갛고 노란 나무들이 화려한 색 터널을 만들어놓고 사람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저렇게 적극적으로 손짓을 하고 있는데 안 가보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터널을 지나는 사이 몸과 마음은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물든다. 다 지우려면 며칠이 걸릴지, 몇 달이 걸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만남의 광장에서 진달래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겨본다. 물론 지금 진달래가 피어있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편안하게 산책하기에 이만한 곳을 추천할 수 없기에 한 번 걸어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긴 길은 아니지만 아주 느긋하고 여유 있는 마음을 누리기에 충분한 곳이다. 앞서 걷는 두 연인의 웃음소리가 밝고 따사로운 햇살처럼 곱게 울려 퍼진다.

숲 문화시설과 전시 온실을 둘러본다. 어린이체험정원과 철쭉원 샛길이 나타난다. 이 길은 단풍나무 터널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이 이 길 앞에서, 또는 터널을 지나며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는다. 다들 단풍나무만큼이나 붉고 진한 웃음이다.

이곳의 단풍나무는 수목원 여러 장소 중에서 하이라이트라고 할 만큼 제대로 물들어 있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그야말로 작품이 나온다. 깔깔 웃으며 터널을 지나가는 세 중년여성, 빨간 단풍나무 가지를 끌어당기고 예쁜 표정으로 사진을 찍는 부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는 젊은 부부. 모두의 얼굴에는 푸근하고 여유로운 미소가 가득하다. 경상북도수목원의 단풍은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선물이다.

단풍 터널을 지나오니 바로 연못이 나타난다. ‘연못에서 미래를 본다’라는 뜻을 가진 삼미담이다. 연못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크고 호수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다. 연못 한가운데에 연이 자라고 있다. 맞은편에는 짙은 갈색으로 물든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그 뒤에서는 매봉이 수목원을 둘러보는 산행객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야말로 한 폭의 풍경화가 연못 안팎에 담겨 있다.

연못 주변 벤치에 가만히 앉아 본다. 가을이 깊어가는 소리가 바람을 타고 귀를 스쳐 지나간다. 그 사이로 겨울이 다가오는 향기가 코끝을 싸늘하게 간질인다. 옷깃을 다시 여미고 미리 가져간 보온 통에서 커피 한 잔을 부어 마신다. 따끈한 기운이 온몸을 데운다. 이것이 바로 평범한 소시민의 작으면서도 푸근한 가을의 행복이다.

글·사진=남태우 선임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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