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역 언론이 구시대 유물이 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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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디지털센터 영상콘텐츠팀장

“부산일보가 뭐예요?”

부산 지역에서 활동 중인 젊은 유튜버를 인터뷰하기 위해 섭외를 진행하다 들은 말이다. 당시 연락을 담당했던 대학생 인턴에게 이 말을 전해 듣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동영상 플랫폼을 무대로 활동 중이라지만, 74년의 전통을 가진 지역 언론사의 존재 자체를 모르다니.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 층에게 기존 매체가 갖는 영향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다.

신문, TV, 라디오 등 전통적인 매체를 일컫는 말 레거시 미디어(legacy media). 레거시는 과거의 유산을 뜻한다. 이러다 정말 신문사를 비롯한 기존 언론의 존재 자체가 구시대 유물 취급을 받을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일부 젊은 층 <부산일보> 존재도 몰라
지역 크리에이터 초청 합동방송 계기
새 구독자 유입, 친밀한 소통 시도
독자 맞춤형 차별화된 콘텐츠 모색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서울에서 활동 중인 부산 출신 유명 틱톡커는 자신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의 지인들이 신문에 자신이 나온 걸 보고 신기해하며 연락을 많이 줬다는 후문이다. 수백만 명의 팔로어를 갖고 있을 만큼 이미 큰 영향력을 가진 크리에이터지만, 종이신문에 얼굴이 실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계기가 됐던 모양이다.

<부산일보>는 젊은 구독자를 끌어들이기 위한 영상 콘텐츠 기획 ‘부크부크(부산+크리에이터)’를 최근 새롭게 선보였다. 지역의 개성 넘치는 크리에이터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기 위한 콘텐츠다. 그들과의 ‘합방(합동방송)’을 통해 새로운 구독자를 확보하고, 다채로운 체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충성도 높은 구독자를 확보한 크리에이터들의 인기에 살짝 업혀서라도 젊은 층에 <부산일보>의 존재를 어필해야겠다는 절박함도 있었다.

‘부크부크’의 첫 번째 크리에이터로 소개된 ‘융덕’은 자신의 소소한 일상 영상(브이로그)을 올리는 대학 새내기 유튜버다. 11일 기준 구독자가 6만 명을 넘는다. 남사친들과 티격태격하는 일상, 메이크업하는 영상, 먹방(먹는 방송)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다룬다. 특히 마라탕을 좋아해 마라탕을 먹는 영상이 점점 늘자 얼마 전에는 ‘마라덕’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기도 했다. 콘텐츠의 성격에 따라 채널을 세분화하는 전략이다.

동영상 플랫폼의 경우 취향과 관심사에 따라 구독자가 확연히 구분된다. 채널 운영자는 구독자와 댓글로 상호작용하며,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업로드한다. 구독자의 충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부산일보> 유튜브 메인 채널의 경우 구독자 8만 명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구독자 6만여 명인 융덕보다 그 충성도는 낮을 것으로 보인다. <부산일보> 메인 채널의 경우 사건사고 영상과 각종 행사 라이브, 기획보도물 등이 마구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구독자와의 친밀한 소통도 일반인 유튜버들을 못 당한다. 이는 레거시 미디어의 또 다른 이름, 매스미디어(mass media)의 한계다.

불특정 다수인 대중에게 일방적으로 많은 정보를 전달하던 기존 미디어의 방식으로는 동영상 플랫폼을 비롯한 SNS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힘들다. 머리로는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 영상콘텐츠팀에 발령받고 난 뒤 지난 1년 동안 뻔히 예상되었던 시행착오를 그대로 밟아 오고 말았다.

2020년을 돌아보며 한 팀원은 이렇게 말했다. “8만에 가까운 우리 유튜브 메인 채널 구독자 대다수가 허수라고 보면 됩니다. 할 수 있다면 기존 채널을 폭파하고, 새 채널을 파고 싶어요.” 다소 과격한 발상이지만 그런 파격적인 시도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르겠다. 정확한 구독자 타기팅에서부터 출발해 이들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전략적으로 제작하고, 긴밀하게 소통하는 것이 지역 언론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일 거다.

얼마 전 <부산일보>에는 이런 전화가 걸려 왔다. “부산일보는 TV면 안 없앨 건가요? 그러면 한 부 구독하고 싶습니다.” 이 독자는 자신이 구독하던 한 일간지에서 TV면이 사라지자 그에 대한 불만으로 우리 신문을 구독하기로 했다고 한다. 젊은 시청자가 유튜브, 넷플릭스로 떠나간 뒤 누가 챙겨 볼까 했던 TV 시간표도 어르신들에게는 중요한 콘텐츠다. 신문의 지면과 온라인 콘텐츠가 ‘일반 시민’이라는 두루뭉술한 대상이 아닌, 세분화된 구독자를 목표로 차별화된 콘텐츠를 제공해야 할 때가 왔다. 인력도 모자라고 시간도 부족하지만, 모두를 만족시키려다 한 사람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 팀은 다음 주도 지역의 젊은 크리에이터를 만나 함께 방송하며, 이들로부터 또 한 수 배우려 한다.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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