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고 윤정규 소설가를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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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덕 소설가

생전에 윤정규 소설가(1937~2002)는 부산 문단에서 ‘윤두목’으로 불렸다. 시원스레 올백으로 넘긴 머리, 위풍당당한 풍채, 말쑥하고 화려한 옷차림, 투박한 부산 사투리. 액션 느와르 영화에 출연할 법한 외모의 그는 후배들 사이에서 두목으로 불리며 부산 문단을 열정적으로 이끌었다. 그가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 특히 부산소설가협회가 창립되고 요산문학상 제정이 발의된 1982년 전후의 부산 문단 지형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문단의 두 기둥인 요산 김정한, 향파 이주홍 선생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윤정규, 최해군, 이규정 등 지금은 작고한 소설가들이 한창 전성기를 보내고 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윤정규 소설가의 생애사와 작품을 정리하고 기록하는 ‘부산 예술인 아카이빙’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터넷과 중고서점, 도서관 서가를 샅샅이 뒤지며 그동안 묻혀있던 자료와 기발표작 원본들을 수집하고 있다. 작가가 생전에 출간한 7권의 소설책 이외에 다양한 매체에 발표한 단편과 장편소설(!)의 원본을 찾아서 확보하는 중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작가의 작품들이 새롭게 조명 받고 연구되기를 희망한다.

2002년 작고한 부산 문단 ‘윤두목’
요산 계승해 “완전히 아들”로 살아

작품에선 갈등·고뇌하는 인간 그려
요산과는 다른 방식 인물·기법 창조

“善, 불의 난무하는 이곳에 있을 것”
그의 삶과 문학 이 가을에 추억하다



윤정규의 소설은 요산 선생의 문학적·정신적 계보를 이어받은 것으로 널리 평가받고 있다. 리얼리즘 세계관에 바탕을 둔 저항 의식과 자유 의지의 표출이야말로 요산 정신을 발전적으로 계승한 문학 정신인 것이다. 생전에 두 사람은 사적인 친분 관계도 매우 돈독했다. 신태범 소설가의 최근 증언에 의하면 윤정규 작가는 수년 동안 거의 매일 요산 선생 댁에 들러 안부를 챙기며 “완전히 아들”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흔들림 없이 불의에 저항하는 요산의 등장인물에 비해 윤정규의 주인공들은 좀 더 갈등하며 고뇌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예컨대 요산의 ‘축생도’, ‘수라도’와 같은 시기에 발표된 윤정규의 ‘사족기행’(1968), ‘오욕의 강물’(1969)에는 자유당 정권 시절에 정치깡패로 활동하며 권력과 부를 챙긴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전통적인 농촌마을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불평등을 묘파한 요산 소설과는 달리, 이 시기의 윤정규 소설은 부패한 정치세력과 적자생존 법칙이 지배하는 도시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역사와 현실 세계를 비판한 두 작가의 공통된 주제 의식이 창작 기법 면에서는 전혀 다른 배경, 인물 유형, 서술 기조 등으로 차별화되어 나타난다.

요산 선생의 ‘과정’에 등장하는 허 교수는 작가의 올곧은 발자취와 음성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과정’과 발표 시기가 같은 윤정규의 ‘이 에덴에서’(1967)에 나오는 홍성수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며 외로움에 젖는다. 그는 거액의 월급을 받지만 무의미한 무풍지대인 ‘에덴’에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회의한다. “善(선)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실을 찾아 몸부림치고 있는 인간이 살고 있는 범죄의 거리 속에 숨어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끔찍한 범죄와 혼란, 그리고 실의의 거리”로 내려서며 선을 찾고자 하는 홍성수의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홍성수는 폭력과 불의가 난무하는 도시에서 고군분투하는 윤정규 소설의 원형적 인물이라고 여겨진다. 이 단편은 작가의 첫 창작집 <오욕의 강물>(1977)에 첫 번째 수록작으로 실려 있다.

한 작가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은 저마다 곡진하고 애틋하다. 영상 인터뷰 도중에 신태범 소설가는 눈물을 훔쳤고, 박정애 시인은 작가의 애창곡이었던 ‘가거라 삼팔선’을 부르며 애통해했다. 작가는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고 윤정규 소설가의 생애와 작품을 되새기며 늦가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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