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태일 50주기, 플랫폼 노동자 보호 위한 전기 돼야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과로사로 추정되는 택배 기사 사망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당정청이 12일 택배 기사를 비롯한 플랫폼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적인 장치를 적극적으로 마련하겠다고 천명했다. 이날 정부가 전격 발표한 ‘택배 기사 과로 방지 대책’도 그중의 하나다. 플랫폼 노동자는 SNS 같은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노동이 거래되는 특수고용직 형태의 노동자를 가리킨다. 정부 대책이 지금이라도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이지만, 세부적인 각론을 정교하게 다듬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한 채 과로사의 위험에 처한 플랫폼 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품 안에 끌어들이는 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비대면 경제 확대 과로사 위험 커져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망 구축 절실

택배 기사를 비롯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의 경우 근로 계약이 아니라 플랫폼 제공 업체나 대리점과 업무 위탁 계약을 맺어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되지 않는 까닭에 어쩔 수 없는 장시간 노동에 내몰려 왔다. 어제 정부가 발표한 택배 기사 과로 방지 대책을 보면, 하루 최대 작업 시간을 정해 그 한도 내에서 작업을 하도록 유도하고, 오후 10시 이후 심야 배송을 제한하도록 권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낮은 배송 수수료 같은 택배사·대리점의 갑질 등 불공정 관행 금지와 이를 담은 표준계약서 작성, 나아가 택배기사의 산재보험 가입을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고 한다.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전태일 50주기를 맞은 오늘, 이 땅의 노동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지난달 8일 택배 기사 김 모 씨가 새벽에 퇴근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을 비롯해 올해 들어서만 14명(협력업체 포함)에 달하는 택배 노동자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았다. 플랫폼 노동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고 노동 강도 또한 점점 거세져 건강 악화와 과로의 위협에 상시적으로 노출돼 있다. 비대면 경제가 확대되면서 고통을 겪고 있는 노동자들은 택배 기사뿐만 아니다. 배달 종사자, 환경미화원, 어린이집 돌봄 교사 같은 노동자들이 감염 위험 앞에서도 노동을 멈출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주 5일 근무, 주 52시간 초과 근무 금지 같은 상식적인 요구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들을 기존의 법과 제도가 보호하지 못한다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건 당연지사다. 택배사들이 마지못해 내놓는 대책을 보면, 택배 기사들의 열악한 노동을 개선하는 데 실질적 효과가 있을지 의문스럽다. 어제 정부 대책도 ‘권고’라든지 ‘유도’ 같은 소극적 대처에 머물러 있다는 인상이 짙다. 12월께 추가 대책이 나올 예정이라고 하는데, 정부가 보다 강력한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법률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태일이 온몸을 불태워 외친 것은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 구축이다. 이제 국회가 마땅히 응답해야 한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