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 보행자’ 차량 5대에 깔려 사망… 누가 책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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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상구에서 술에 취해 도로에 누워 있던 것으로 추정되는 40대 남성이 지나가는 차량 여러 대에 깔려 숨졌다. 경찰은 한밤중에 차량 5대가 이 남성 위를 연이어 지나간 것으로 보고, 운전자 과실 등을 따지기 위해 자세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15일 부산 사상경찰서는 지난 14일 오후 10시 55분 사상구 덕포동 부산 고용노동부 북부지청 앞 백양대로에 누워 있던 40대 남성 A 씨를 카니발 차량이 깔고 지나갔다고 밝혔다. 경찰은 카니발에 이어 뒤따르던 스파크, 쏘울, 쏘렌토, 쏘나타 등 차량 4대도 차례로 A 씨 위를 지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차량 5대에 깔린 것으로 추정되는 A 씨는 현장에서 숨졌다.

40대 남성 음주 추정 상태에서
사상구 도로에 누워 있다 참변
운전자 3명 신원 확인, 2명 불명
‘치사’ 적용 위해 과학적 조사 필요

경찰은 당시 A 씨 위를 처음 지나간 카니발 차량 운전자인 30대 B 씨가 직접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밝혔다. 다만 주변 차량 블랙박스 영상 등을 분석한 결과 B 씨 이후에도 차량 4대가 A 씨를 깔고 지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영상 분석 등 조사가 더 필요하기는 하지만, 모두 5대의 차량이 A 씨 위를 지나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경찰은 A 씨를 깔고 지나간 운전자 3명의 소재만 파악한 상황이다. 카니발 운전자에 이어 2번째로 지나간 스파크와 5번째로 지나간 쏘나타 운전자 신원이 각각 50대 여성과 60대 남성으로 확인했다. 다만 3번째로 지나간 쏘울과 4번째로 지나간 쏘렌토 차량은 번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신원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은 A 씨가 술에 취해 백양대로에서 신모라사거리로 향하는 도로의 1차로에 누워 있다가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경찰 관계자는 “주변 목격자 진술 등에 따르면 A 씨가 술에 취한 모습으로 백양대로 1차로까지 이동한 것으로 파악된다”며 “좀 더 자세한 상황은 수사 중이라 밝히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찰은 운전자 5명 모두를 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치사) 혐의로 입건해 자세한 사고 경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이 파악한 운전자 3명에 이어 나머지 2명도 소재를 파악하는 대로 조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가해차량 운전자의 과실 정도를 따져 혐의를 적용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차량이 A 씨를 사망에 이르게 했는지 등 여러 사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찰은 A 씨 부검 결과를 바탕으로 결정적 사망 원인을 파악하고, 사고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치사 혐의를 적용할 운전자를 특정해야 한다. 또 사고 직후 운전자 후속 조치 등도 개별적으로 조사할 방침이다. A 씨가 도로 위에 누워 있었다는 정황 등을 참고해 과실 정도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조사 과정이 상당히 복잡할 수밖에 없다.

앞서 2015년 인천에서 보행자가 차량 3대에 잇달아 치여 숨진 사고와 관련해 법원은 1차 가해 차량보다 2차 가해 차량의 과실이 크다고 판결했다. 1차 사고 당시 다리와 몸통 등에 부딪혀 사망에 이를 정도의 부상을 입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부장판사 출신의 부산 모 변호사도 “가해 차량이 여러 대이기 때문에 과실치사의 혐의를 적용하기까지 매우 과학적인 조사 과정이 필요하다”며 “과실 정도는 형사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배상 문제와도 직결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들 조사를 진행해야 각자 과실 정도 등을 따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부산에서만 총 24명이 ‘스텔스 보행자’ 사고로 숨졌다. 스텔스 보행자는 술이나 약물 등을 복용한 뒤 도로에 누워 있는 보행자를 뜻한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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