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을 담는 게 시조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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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세 번째 시조집 ‘거울 속 남자’



“시절가조(時節歌調)인 시조는 현시대의 아픔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시대정신을 담아야 합니다.”

세 번째 시조집 <거울 속 남자>(책만드는집)를 펴낸 김덕남 시조시인의 지론이다. 시조집에는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 소외당하는 이웃에 대한 연민, 역사 현장 성찰 등을 다룬 시조 80편이 실렸다.



‘병목을 거머쥐고 그네가 들썩인다/날 수도 내릴 수도 외줄은 길이 없어/명치끝 시린 절망을 바닥에다 쏟는다//(중략)//실직일까 실연일까 등이라도 쓸어줄걸/맥없이 주저앉은 무릎 저린 시간 앞에/연초록 바람 한 잎이 어깨 위를 감싼다’(‘거울 속 남자’ 중). 시인은 아파트에서 자주 마주쳤던 한 젊은이가 어느 날 그네에서 술병을 쥐고 흐느끼는 모습을 보았다. 실직이나 실연 등 삶의 아픔을 겪고 있는지도 모른다. 시인은 자연의 힘을 빌려 청년이 스스로 복원하는 힘을 갖기를 응원한다.

시인은 민의를 외면하는 정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다. ‘머리를 쏙 내밀자 망치로 치고 있는/강서를 조준하자 강동이 헤헤 웃는/널뛰는 의사봉 아래/민초들만 터지는’(‘두더지 게임’ 전문)에선 서민을 오히려 힘들게 하는 정부 정책을 준엄하게 질책한다. ‘진보나 보수 따윈/밥그릇이 아니다/컵라면 면발 위로/추락하는 빗방울들/바닥을 허우적이다/끼니가/새고 있다’(‘재하청’ 전문)에선 정책의 악용으로 탄생한 재하청 노동자들의 삶의 비애와 절박함을 다뤘다.

‘중심을 꺾지 마라 네 몸은 직립이야/뽀송송 물오르는 백화점 인턴인 걸/배꼽에 나란한 두 손, 하늘 향해 뻗어야지/억지로 웃지 마라 선거철이 아니잖아/돌아서면 뻣뻣한 목, 꾼들의 뒤태인 걸/구십 도 늪에 빠질라 마약같이 혼몽한’(‘구십 도’ 전문)에선 당선된 뒤 태도가 돌변하는 일부 정치인을 비판하는 한편, 이 시대 젊은이들에겐 당당한 삶을 살기를 주문한다.

시인은 일상 체험을 바탕으로 시조를 쓴다. 역사 현장에 대한 단상을 담은 시조도 마찬가지다. ‘끌려온 수술대 위 손발이 묶였구나/생잡이 칼날 아래 하얗게 질린 동공/달 한쪽 잘려 나가네/꽃스물이 찢기네’(낮달맞이꽃-소록도 단종대(斷種臺)를 보며’ 중).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아픈 역사가 새겨진 소록도 단종대를 본 시인. 한센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한 일본인들은 한센병 환우들끼리 자녀를 낳지 못하도록 단종대에서 강제로 정관 수술을 시켰다고 한다. 당시 조선인들의 절통하고 애끓는 모습이 선연하게 연상된다.

2010년 <부산시조> 신인상을 받은 시인은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지난해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을 받았다.

김상훈 기자 ne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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