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반도체 세계 1위 삼성의 위기?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오르기도 어렵지만 지키기는 더 어렵다.’

운동선수나 기업가에 있어서 세계 1위에 대한 부담감은 이만저만 아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무적복서 무하마드 알리도 결국 세계 타이틀을 내줘야 했다.

운동선수·기업가 1위 지키기도 부담
노키아·코닥·델파이도 내리막길
삼성전자도 반도체서 1위 자리 위협
미·중 반도체 적극 지원…한국은?

기업도 마찬가지다. 노키아는 무려 14년간 휴대폰 점유율 세계 1위를 했지만 스마트폰에 밀려 내리막길을 걸었다. 필름업체 코닥과 자동차 부품업체 델파이도 한때 세계를 호령했지만 각각 디지털 카메라 확대와 고정비 부담에 따른 적자 증가로 결국 왕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글로벌 시장은 정글이다. 아무리 높은 점유율의 업체라 하더라도 미래 기술개발이나 비용감축을 통한 경쟁력 확보 등을 갖추지 않으면 곧바로 후발주자들에 따라잡히게 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정보통신기술(ICT) 융·복합이 활발히 이뤄지는 상황에서 어느 기업에서 새로운 기술을 선보이며 업계를 주도할지 예측하기 힘들게 됐다.

얼마전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하며 업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마이크론테크놀리지는 낸드플래시 부문 점유율 세계 4위 기업인데, 점유율 1위 기업 삼성전자를 기술력으로 넘어선 것이다. 기존 128단을 넘어서는 ‘7세대 V낸드’ 개발을 진행 중인 삼성으로선 충격파가 적지않다.

낸드플래시 부문 글로벌 5위인 SK하이닉스도 최근 인텔 낸드 사업부문 인수 결정으로 점유율 2위로 올라서게 됐다. 마이크론과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추격 가시권에 두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D램 분야 세계 1위인데, 앞으로 이 자리도 수성이 위태롭게 됐다.

차세대 D램 규격인 ‘DDR5’ 생산 경쟁에서는 D램 2위인 SK하이닉스가 지난달 기존 D램보다 데이터 전송 속도를 최대 1.8배 향상한 DDR5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고 공개했기 때문이다.

삼성이 아직까지는 주요 반도체와 휴대폰 점유율 등에서 세계 1위를 지켜내고 있지만 수년 이후에도 계속 1등을 한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물론 삼성도 R&D(연구 개발)에선 쉼표 없는 행진을 하고 있다.

삼성은 최근 2년간 미래 4대 성장 사업에 180조 원, 반도체 비전 2030에 133조 원, 퀀텀닷(QD) 디스플레이에 13조 1000억 원 등으로 총 300조 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해외 대형 M&A(인수 합병)는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많다. 2016년 국내 기업의 가장 큰 M&A로 기록된 전장기업 하만을 9조 3000억 원에 인수했지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2017년 2월 이후 삼성의 ‘M&A 시계’는 사실상 멈춰져 있다.

최근 IT 기업들이 광범위한 M&A를 보이고 있는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마이크론이 최근 낸드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지난 2013년 당시 D램 시장 세계 3위인 일본 엘피다를 인수한 것과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기업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자체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앞선 업체들이나 기술력을 갖춘 업체들과의 인수 합병도 주요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달 이건희 회장의 별세로 본격적인 총수 경영을 하게 됐다. 앞서 지난 5월엔 후계 경영 포기와 노조 활동 보장 등을 통해 ‘뉴 삼성’으로의 변화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이제는 삼성을 포함한 기업들에 대해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상속세를 포함한 세제 부담,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확대, 각종 환경 규제 등으로 “한국에선 기업 못해먹겠다”는 얘기가 여저기기서 나오고 있다.

한국 상황과는 달리 미국과 중국의 경우 주요 업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직접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우뚝 일어섬)’와 미국의 ‘반도체 리쇼어링(제조업 본국 회귀)’이다.

미국은 세계 유수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들을 자국 영토에 불러 모으며 무려 27조 원 이상을 지원하는 법안을 만들고 있다. 중국도 반도체 굴기를 내세우고 정부를 중심으로 수백조 원의 자금을 조달해 산업 전반의 지원 정책을 펼치며 글로벌 생산 기지화를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세계 1위는 기업 혼자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배동진  서울경제팀장.djba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