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맥판막 협착증, 가슴 열지 않는 ‘TAVI’ 고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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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

가슴을 열지 않고 시술하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 사타구니 근처 대퇴동맥을 통해 카테터를 넣어 인공판막을 삽입하는 시술이다. 양산부산대병원 제공

시골에서 살고 있는 92세 P할머니는 지난 여름부터 밭일을 하다 보면 금세 숨이 차고 가슴이 심하게 답답함을 느꼈다. 심초음파 검사 결과 중증의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진단됐고 심장의 대동맥판막을 교체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다.

전신마취와 개흉술이 필요한데 할머니의 나이와 건강상태가 우려돼 수술을 미뤘다. 그러다 최근 국소마취만으로 경피적 대동맥 판막 치환 시술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양산부산대병원을 찾았다.

순환기내과와 흉부외과의 다학제협진을 거친 뒤 할머니는 가슴을 여는 개흉술보다는 다리 동맥으로 접근할 수 있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 시술을 추천받았다. 무사히 시술을 받고 할머니는 3일 뒤 집으로 돌아왔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심장의 문’ 역할을 하는 대동맥판막이 닳거나 좁아져서 굳는 질환이다. 증상 발현 후 2년 동안 치료받지 않은 환자의 절반 가량이 사망하는 치명적인 병이다.

대동맥판막이 굳어 개폐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 혈액이 흐르는 입구가 좁아져 온몸으로 퍼져야 할 혈액의 흐름이 감소한다. 판막이 좁아져 혈액 순환에 장애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주로 노화로 인해 판막에 칼슘이 쌓이는 퇴행성 원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외에 고혈압, 흡연 등도 위험인자이다.



판막 좁아져 혈액 순환 장애 발생
퇴행성·고혈압·흡연 등이 주원인
중증 진행 전 치료받는 것이 중요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시술 필요

■호흡곤란, 흉통, 실신 등의 증상

심장판막에 고장이 나면 다른 심장병에 2차적으로 영향을 주게 된다. 여러 판막이 동시에 망가지는 경우도 흔하다. 판막 질환이 심해지면 심장의 효율성이 떨어져 만성심부전, 부정맥 등이 유발될 수 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나이가 들면 발병률도 늘어난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유병률은 1.8% 정도지만 65세 이상에서는 10.7%로 급증한다. 국내 대동맥판막 협착증의 실제 진료 환자 수는 2010년 1만 4058명, 2015년 2만 2289명, 2019년 3만 1694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중등도 이상으로 진행되기 전에는 증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심장 근육이 두꺼워지거나 경직되어 호흡 곤란, 흉통, 실신 등의 증상을 초래한다.

호흡곤란 등의 증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지 않으면 5년 내에 10명 중 약 6명의 환자가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증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진단은 그리 어렵지 않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대부분의 경우 청진 중에 들리는 심잡음으로 진단할 수 있다. 또 심장초음파나 운동부하 검사 등을 실시해 대동맥판막 협착증이 얼마나 심한지 판단한다.



■가슴 열지 않는 시술, 회복기간 짧아

대동맥판막 협착증은 심장 모양과 크기, 동맥 구조, 다른 의학적 문제 유무 등에 따라 적용할 수 있는 치료 옵션이 다양하다.

증상이 가벼울 때는 약물치료가 시도된다. 주로 이뇨제를 통해 폐에 고여 있는 과도한 수분을 제거하여 숨찬 증상을 치료한다. 혈액 순환을 개선하기 위해 대동맥판막에 작은 풍선을 넣어 대동맥판을 넓히는 풍선확장술을 시행할 수도 있다. 다만 효과가 일시적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판막 교체 수술 혹은 시술이 필요하다.

판막교체 방법으로는 가슴을 열어 문제가 된 판막을 인공판막으로 교체하는 수술적 대동맥판막 치환술과 가슴을 열지 않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TAVI)이 있다.

대동맥 판막증이 있는 환자는 예전에는 가슴을 여는 수술을 통해 인공판막을 삽입했다. 하지만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30% 이상이 고령 또는 동반질환으로 인해 수술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TAVI 시술이 개발됨으로써 수술의 위험도가 크게 낮아져 이들 환자도 시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TAVI는 협착된 대동맥판막을 대체할 수 있는 인공판막을 카테타라 불리는 긴 관을 사용해 혈관 속으로 집어넣어 협착된 대동맥판막 부위에 삽입하는 시술이다.

흉부외과 제형곤 교수는 “TAVI는 가슴을 열지 않아 시술 및 회복 기간이 짧고, 개흉 수술로 인한 여러 합병증을 줄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며 “하지만 수술을 충분히 견딜 수 있는 환자는 경제적 부담 등의 이유로 굳이 TAVI 시술을 권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수술 후 합병증 관리 중요

TAVI 시술이 국내에 도입된 것은 2011년 7월이다. TAVI 시술을 하기 위해선 심장내과와 흉부외과 의료진 간의 다학제적 협업이 필수다.

심장내과에서 TAVI 시술을 하는데 당초 계획대로 시술이 진행되지 않으면 수술로 전환해야 한다. 출혈이 심하거나 깊은 곳의 혈관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수술을 할 수밖에 없다. 이때는 흉부외과 전문의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치료하기 위해 멀리 수도권까지 가서 굳이 원정치료를 할 필요는 없다. 순환기내과 이상현 교수는 “고령 환자의 경우는 수술이나 시술을 받기 위해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술이나 치료를 마친 후에 관리를 잘 해야 하며 합병증 여부를 세심하게 챙기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병군 선임기자 gun39@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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