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이슬 /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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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에게도 주먹이 있다

일그러지기 싫어 온몸으로 손잡이 만들고

내 한 몸으로 이룬 꽉 찬 세상

출렁이던 그 방도 때가 되면 버릴 줄 안다



물 한 방울이 다른 생의 완성이라고

통쾌한 이별을 반짝일 줄도 안다



너무 늦지 않았나 모르겠다

반짝, 햇살 눈에 넣으며 낙하하는 저 믿음



-일생에 한 번이라도 너희는 떨어진 이후를 아니?



그토록 괴롭히던 공중을 향해

나의 부재를 맛보아라

한 방 주먹을 날리면서



-이정모 시집 중에서-


깨끗하고 연약한 이미지의 대명사인 이슬. 누군가는 반짝이는 이슬에게 묻는다. 당신에게도 상처가 있냐고. 그러나 시인은 이슬에게서 온몸으로 손잡이를 만들어 공중을 붙들고 있는 주먹의 모습을 본다. 한 손가락에만 힘을 빼도 무너져 버릴 한순간. 한세상이 한순간 아니던가. 용을 쓰는 만큼 그토록 영롱한 순간을 버티기가 그리 오래지 않을 것도 짐작한다. 그렇다면 힘이 빠져 모양새가 흐트러지고 구질구질해지기 전에 공중에게 한 방 주먹을 날리고 싶다. 장렬하게 한 방울 이슬이 떨어진다. 19세의 랭보는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라고 쓴다. 그는 이슬방울처럼 영롱한 나이에 절필했다. 김종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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