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부산 대개조’한다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은 언제 개조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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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설치미술이다’라고 우스갯소리를 하십니다.”

지난 13일 열린 부산시 문화체육국 행정사무감사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다. 시의회 김태훈 행정문화위원장이 발언대로 불러낸 부산시립미술관장의 손에 들린 사진 한 장을 보고 있자니 기가 막혔다. 미술관에 빗물이 줄줄 새서 쓰레기통을 줄줄이 세워 놓고 물을 받는다니 누가 믿겠는가. 차라리 진짜 설치미술이었으면 했다.

이번 행감에서 3명의 부산시의원이 시립미술관 리모델링 문제를 거론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그만큼 시립미술관 노후화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시립미술관의 노후화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4~5년 전부터 노후화에 따른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지만 당장 급하지 않은 일로 치부되어 왔다. 올여름 누수 사태는 이런 문제를 방치해 온 결과가 모두의 눈에 보이는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항온·항습을 못 맞추는 문제다. 이번 누수 이후 온습도 조절이 안 돼 ‘1960-70년대 부산미술’에 전시된 작품 몇 점이 손상됐다. 그중에는 외부에서 빌려 온 작품도 있다. 2년 전에는 기획전에 전시된 작품이 습도로 울기 시작해 바로 수장고로 내려보내는 소동을 빚었다. 같은 해 청년 작가 발굴전에 전시된 작품 2점은 패널이 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니 부산시립미술관이 다른 미술관에 작품 대여를 요청하면 “너희는 온습도를 못 맞추잖아”라는 답이 돌아온다. 특히 1970년대 이전의 회화 작품은 아예 가져올 수 없다. 물감층이 두꺼운 박수근의 그림, 천경자의 분채 작업, 김환기의 최고 절정기인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작품 등은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볼 수 없다. 지난해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15만 명이 관람한 근현대 명화전 같은 전시 개최는 꿈도 못 꾼다.

올해 부산시립미술관의 전시를 보면서 부산현대미술관과의 차이는 무엇인가를 생각한 적이 있다. 여기에 답이 있었다. 온습도에 상대적으로 영향을 안 받는 작품 위주로, 과거 일정 시기 이전의 작품을 빼고 전시를 하다 보니 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이 헷갈리는 것이다. 시는 부산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이 각각의 정체성을 추구할 것을 주문하면서 왜 그럴 환경은 조성해 주지 않는가.

부산시가 시립미술관과 현대미술관의 소장품 예산을 절반으로 깎은 것도 그렇다. 코로나19 지원금 때문이라면 두 미술관의 소장품 예산을 유지하면서 지역 작가 중심으로 작품을 구입해 줄 것을 당부하면 될 일이다. 미술관은 지역 미술사를 제대로 쓸 소장품을 구입해서 좋고, 지역 작가들은 경제적 도움과 더불어 미술관에 작품이 들어갔다는 자긍심도 가질 수 있다.

최근 부산 미술의 달라진 존재감을 다루는 기사가 여러 건 나왔다. 다양하게 지역을 품어 낸 부산비엔날레와 함께 부산시립미술관의 전시에 대한 호평도 포함된다. 여기에는 매주 온습도 관리표를 체크하는 관장, 조도 조절이 안 되는 전시장 조명에 한 장씩 한지를 끼우는 학예실 직원, 전시장을 들락거리며 구석구석 온습도를 직접 측정해 수동으로 작업하는 공조실 직원의 ‘아등바등’이 숨어 있다.

부산시가 시립미술관을 대하는 태도를 정준모 미술평론가는 신랄하게 비판했다. “집도 지은 지 10년, 20년이 지나면 수리를 하는데 시설 보수는 하지 않고 운영에만 신경 쓴다. 미술관 내장은 썩어 들어가는데 얼굴에 화장만 하는 꼴이다.” 부산 시민인 기자의 입장에서 낯이 뜨거워지는 지적이었다.

시립미술관 리모델링은 지금 시작해도 빨라야 2023년 하반기에 끝난다. 차일피일 미루면 코로나가 끝난 뒤 관광 수요가 터져 나올 때 부산은 대표적 문화상품인 시립미술관 문을 닫고 타 도시와 경쟁하는 상황이 된다. 국제관광도시 부산, 월드엑스포 유치를 제대로 해내려면 도시기반시설 중 문화예술시설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

시민들의 문화 향유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부산시립미술관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시립’이라는 단어는 그냥 붙이는 것이 아니다. 책임이 따른다. 시립미술관 리모델링 실시설계비 예산을 또 다음으로 미룬 부산시에 묻는다. 부산을 대개조한다면서 부산시립미술관은 언제 개조할 것인가? 


/오금아  문화부 기자.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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