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피와 벽돌로 쌓아 올린 역설의 문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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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의 문명사 /데이비드 프라이



“장벽이 없었다면 중국의 학자도, 바빌로니아의 수학자도, 그리스의 철학자도 없었을 것이다.”

미국 이스턴 코네티컷 주립대학의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장벽의 문명사>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이처럼 장벽은 발명을 끌어내고 문명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저자는 4000여 년 전에 세워진 고대 시리아 장벽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 중국, 로마, 몽골, 아프가니스탄, 미시시피강 하류, 중앙아메리카를 거쳐 오늘날의 미국-멕시코 국경으로 이끈다. 피와 벽돌로 쌓아 올린 거대한 역설의 문명사를 조망할 수 있다.

장벽에는 민초들의 고단함이 녹아 있다. 최초의 문명을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인들은 도시를 토벽으로 둘러쌌다. 진흙은 점토판을 만드는 데는 유용했지만, 벽돌을 만드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다. 비가 내리면 벽돌에서 진흙이 흘러 내려 배수로를 막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메소포타미아인들은 진흙 바구니를 이고 나르며 벽 쌓기를 멈추지 않았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쇠락하는 듯했던 장벽은 21세기 들어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인도,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튀니지, 에콰도르 등에서 새로운 장벽이 솟아나고 있다. 난민의 대량 유입, 테러, 전염병, 마약 등에 대한 두려움이 장벽 건설을 전 세계적 현상으로 만들고 있다. 데이비드 프라이 지음/김지혜 옮김/민음사/408쪽/2만 원. 김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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