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식의 인문예술 풀꽃향기] 가을 들풀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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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 영국 화단에 혜성처럼 등장한 라파엘전파는 당대 유럽을 휩쓸던 쿠르베 및 인상파의 유물론적 사실주의 경향에 반대하여 자연의 영적 성격을 탐색하고 그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으려 했다. 눈부시게 빛나는 대자연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 위해 흰색 캔버스에 밝고 선명한 초점 기술을 사용했고, 보석처럼 반짝이는 투명성을 유지하려고 역청 대신 얇은 안료로 채색하였다. 밀레이가 그린 ‘농부의 딸’이나 ‘머뭇거리는 가을’을 보면 가을 들녘이 얼마나 화사하고 풍요롭게 그려졌는지 모른다. 여기서 작가는 그가 누비던 스코틀랜드 퍼스셔(Perthshire) 지역의 가을 들녘을 단풍으로 물든 나무들과 금빛 들풀들이 출렁이는 원초적 낙원처럼 묘사한다. 그의 그림 속 가을은 알베르 까뮈의 표현처럼 마치 ‘모든 잎사귀들이 꽃이 되는 두 번째 봄’ 같다.

조선 항아리에 담긴 소박한 들풀 문양들
황량한 들녘 지키는 이 땅의 민초들 닮아
과장과 기교에 빠진 중국·일본 예술과 달리
무심한 듯 고결한 아름다움 '심금' 울려

하지만 이 시대보다 한 세기 전인 18세기 조선의 화공들은 한결 같이 쓸쓸한 가을 들녘을 그리고 있었다. 문화의 황금기인 영·정조 시절의 내로라하는 화가들이 왕실이나 사대부들의 지원 아래 고급 비단에 갖은 기교로 먹물 장난을 하는 동안, 이 땅의 이름 없는 화청장(畵靑匠)들은 초벌구이를 끝낸 백자 항아리에 비싼 청화 안료(回靑)를 아끼며 가느다란 선으로 가을 들녘에 외로이 서 있는 추초(秋草)들을 그린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제강점기 일본의 문화예술인들이 열광했던 청화백자 추초문 항아리가 탄생한 계기였다.

조선의 백자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빛깔과 형태는 물론 문양에 있어서도 시대적 특징을 보인다. 특히 청화백자의 경우 15세기 중반에서 16세기 말 임진왜란 때까지의 전기는 운룡문·칠보문·당초문·보상화문·매화문이, 임란에서 18세기 중엽까지의 중기는 왕실 공식 행사에 쓰이던 용준(龍樽) 외에는 대개 매란국죽의 사군자 무늬가 일반적이었다. 임란 이후 한 세기 동안은 회청이 부족하고 무엇보다 숙련된 도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도자 생산의 생태계가 근본적인 붕괴를 맞는다. 그러다 조선 도자는 17세기 지나 18세기 들어 활성화되기 시작했고 기면 전체에 걸쳐 문양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아래쪽에 땅을 의미하는 가는 횡선을 한 줄 두르고 그 위에 간결한 초화(草花) 문양을 시문하는 식이었다. 금사리와 분원리 관요에서 나온 유백색 병이나 항아리에 그려진 초화문은 여백을 많이 남겨 마치 휑한 들녘에 외로이 서있는 가을 들풀을 보는 듯했다. 이런 문양을 두고 일본 비평가들은 처음에는 초화문·야국(野菊)문·야화(野花)문 등으로 칭하다가 1940년대에 접어들면서 그런 문양이 주는 예술적 깊이와 일본미와의 공감성을 발견하고 추초수(秋草手)라는 독특한 명명을 하게 되었다. 그들에 의하면 이런 추초수 항아리들이야말로 무로마치(室町) 시대 이래로 일본의 전통적인 미적 개념으로 자리 잡은 소박과 간결함의 ‘와비(侘)’와 고요와 한적함의 ‘사비(寂)’를 함께 담고 있는 미의 완제품이었다.

이렇게 근세 일본과 중국이 형형색색의 호들갑스러운 채색 자기들을 양산할 때, 조선의 도공들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무심한 백자 달항아리나 야단스럽지 않은 추초문 도자기를 구워내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것도 무슨 대단한 기교를 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마음이 움직이고 손이 가는 대로 무심히 그려 넣은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도자들은 백자의 고아함과 초화의 청아함이 어우러져 중국이나 일본이 도저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서정성과 문기가 넘치는 차원이 다른 조선 백자의 격조를 드러낸다. 중국의 도자가 경극의 주인공들처럼 과장과 허세에다 거들먹거리는 모양이요, 일본의 기물이 교태를 부리는 게이샤의 모습이라면, 조선의 도자는 ‘일생 동안 추워도 결코 향을 팔지 않는 매화(梅一生寒不賣香)’의 자태요, 고결하고 강직한 조선 선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조선의 도공들이 시문한 추초들은 척박한 우리 산하에서 잘 자라는 패랭이꽃(石竹花), 으아리(仙人草), 여랑화(女郞花), 쑥부쟁이(野菊), 붓꽃, 억새풀 등이다. 이 풀꽃들은 역사의 비바람 속에서도 어질고 꿋꿋하게 살아온 이 땅의 민초처럼 낮에는 센 들바람 맞고 밤에는 찬 달빛 쐬면서도 황량한 들녘을 지키는 이 땅의 주인공들이다. 한편으로는 조선 선비 같은 탈속과 은일, 절개와 고결함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이 열광했던 고졸미, 애상미, 고적미, 청초미를 드러낸다.

<풀잎>의 작가 휘트먼은 ‘풀 한 잎이 별들의 여행 못지않다’고 읊조렸다. 이것에 감명을 받은 반 고흐는 하늘을 쳐다보고 아름다운 ‘별밤’을 그렸지만, 우리는 저 가을 들녘에 핀 들풀 하나 바라본다. 그러면서 다시금 조선의 선비 이양연(李亮淵)의 시구를 떠올려 본다. ‘우리네 인생도 들풀 같지 않은가(人生不如草)?’

/전 고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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