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년 인생, 첫 이름을 찾아 준 그는 ‘은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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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적자(無籍者)’. 호적이 없는 사람이란 뜻이다. 고아로 태어나 부산구치소에 수감 중인 A(64) 씨는 올 10월까지 무적자로 64년 세월을 보냈다. 무슨 일을 해도 벽에 막혔던 인생이었다. 결국 그는 절도 등 범죄에 손을 댔다. 사실 올해 초 부산구치소에 들어온 A 씨에게 교정시설은 낯선 곳도 아니었다.

A 씨는 지난달 특별한 선물을 받았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자신의 이름과 사진이 박힌 주민등록증이 그것이다. 급성 신부전증으로 구치소 병동에 누워있던 A 씨의 뺨 위로 눈물이 흘렀다. 수감 이후 혈액 투석을 받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은 그였지만 이 주민등록증은 그에게 새 희망을 품게 했다. 지금도 A 씨는 주민등록증을 복사한 종이를 품에 지닌 채 치료를 받고 있다.

부산구치소 근무 김성민 교위
‘무적’ 수감자 호적 등록 매진
6개월 만에 주민등록증 수령
“새 사람으로 성실히 살아갈 것”
“범죄로 얼룩진 인생 도와 기뻐”



주민등록증 발급이 가능해진 것은 A 씨가 올 2월부터 호적 등록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과정 탓에 엄두도 못 내던 그에게 부산구치소 고충처리반 김성민(사진·46) 교위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김 교위는 여러 기관을 돌며 협조를 구했고, 결국 지난달 부산가정법원에서 A 씨 성·본 창설허가와 가족관계등록창설허가 등을 받아냈다. 교정시설 수감자가 호적 등록을 한 전례를 찾기 어려워 김 교위가 서류더미에 파묻혀 지난 시간만 꼬박 6개월이었다. 


64년동안 무적자 신세로 살다 부산구치소의 도움으로 주민등록증을 갖게 된 재소자 A 씨는 <부산일보>로 감사의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내왔다.


김 교위는 “A 씨의 성장 과정과 생계형 범죄로 얼룩진 인생을 보니 도움을 드리고 싶었다”며 “당시 구치소장님이 강하게 격려해주신 데다 주위 동료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생계형 범죄 등으로 수감된 재소자 중 호적이 없는 경우가 꽤 있다. 법률구조공단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다들 그런 정보를 잘 모르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부산구치소 측은 앞으로 A 씨가 환갑이 넘도록 받지 못했던 의료보험 등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출소 후에도 의료비 지원과 함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이 가능한 것은 물론이다.

A 씨는 지난 17일 <부산일보>에 편지를 보내 부산구치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알려왔다. 특히 “어려워도 우리 함께 해보자”며 호적 등록에 나서준 김 교위는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A 씨는 “출소하더라도 병원비가 막막해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소외받고 보잘것없는 제게 관심을 가져준 김 교위 덕에 새 사람으로 성실히 살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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