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시인’보다 ‘바다 시인’으로 불리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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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 부일해양CEO아카데미 강연

‘바다에는 한 사나이가 살고 있었지요./바람 같은 것/물새 같은 것/새벽마다 일어서는 고독 같은 것/약속을 파랗게 뒤집고 돌아앉아/빈 가슴을 채우고 있었지요.’(‘바다’ 중).

최근 부일해양CEO아카데미 제6기 과정 네 번째 강좌로 안도현 시인의 ‘내가 쓴 바다의 시’가 열린 부산일보 10층 소강당.

‘내가 쓴 바다의 시’ 뒷이야기 등 소개
“시 형식, 운율은 감상에 도움 안 돼
의미 파악보다 그 자체 즐기면 돼”

한 참석자가 안도현 시인의 시 ‘바다’를 낭송했다. 안 시인이 고2 때 쓴 시로 1978년 <학생중앙> 문학상 당선작이었다.

“바다를, 굵은 팔뚝을 지니고 수염이 난 남자로 표현한 시였죠. 해양 분야 일을 하는 분들에게 바다 관련 시를 소개하기 위해 몇 편 골라왔습니다.”

이날 강좌는 안 시인이 쓴 바다 관련 시 8편을 함께 낭송하고 시 창작 과정에 얽힌 뒷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경북 예천 산골 출신인 안 시인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가서 포항 바다를 처음 봤는데 상상보다 바다가 컸다”고 했다. 그는 대구에서 고교를 마친 뒤 전북 익산에 있는 원광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그땐 군산 바다가 가장 가까운 바다였다.

“군산 출신 문인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도 군산 바다를 의미합니다. 금강에서 내려오는 흐린 물이 바다로 가서도 탁한 색을 띱니다.”

‘수평선을 바라보았을 때/쓸쓸한, 끝이 없는 그곳은 그대들의/葬地(장지)인가, 버릴 수 없는 어두운 바다에/누가 죽어 자기의 혼을 갖다 버리는지/머리 풀고 바다가 우는 것 같다’(‘22시 바다’ 중).

안 시인이 대학에 입학했던 1980년 쓴 시다. “그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광주에서 살육이 벌어졌지만, 모두가 이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했죠. 당시 비장한 마음으로 광주에서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이 시를 통해서 하고 싶었어요. 이때 문학은 나 혼자 하는 게 아니며, 내 시가 우리 사회와 연결돼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안 시인은 ‘너에게 묻는다’ ‘반쯤 깨진 연탄’ ‘연탄 한 장’ 등의 시로 ‘연탄 시인’으로 불린다. “연탄 소재 시는 4편만 썼는데 연탄 시인이 돼 버렸네요. 오히려 바다 소재 작품을 더 많이 썼죠. 연탄 시인보다는 바다 시인으로 불리고 싶어요.”

안 시인은 ‘명태선’이란 음식이 나오는 자작시 ‘북방(北方)’을 소개하며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백석이라고 했다. 안 시인은 2014년 <백석 평전>을 펴내기도 했다. 평안북도 정주 출신인 백석의 시는 현재 국내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다. 안 시인은 “백석 시집 <사슴>에는 평북 음식이 늘 언급돼 우리가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다’고 했다. 안 시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해장국인 물메기탕을 소재로 쓴 ‘물메기탕’과 근작시 ‘줄포만’도 소개했다.

안 시인은 “시의 형식, 운율, 상징 등 개념적인 지식은 오히려 시 감상에 도움이 안 된다”며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따라부르듯이 시도 의미 파악보다는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고 강조했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사진=강선배 기자 k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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